LA시장 선거를 앞두고 마이클 우 전 LA시의원은 LA타임스에 “선거에 당선되는 것과 정치를 잘하는 것은 다른 자질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기고를 했다. 선거야 유권자들에게 어필만 잘하면 되는 것이지만 실제로 정치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선거는 아닌 말로 거짓약속을 해서라도 유권자들의 마음만 얻으면 그만이다. 베스트북이 아니더라도 얼마든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듯이 말이다.
‘선거의 귀재’가 곧‘정치의 귀재’는 아니다. 정치는 선거와 다르다. 정치는 서로 충돌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주는 행위다. 그래서 대화와 소통, 경청과 설득, 양보 같은 덕목이 요구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라면 더더욱 말할 나위 없다. 민주사회에서 지도자의 힘은 물리력이 아닌 설득력에서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3주가 지나고 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이 보여준 스타일은 설득의 리더십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자신이 지명한 장관후보자들을 둘러싼 논란과 야당의 ‘발목잡기’로 지지부진한 정부조직 개편에 답답하고 화가 치밀었을 법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 앞에서 그런 분노를 드러낸 것은 옳지 않다. 요즘 신문에 실리는 대통령 사진들을 보면 표정에 서린 결기에 섬뜩할 정도다.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선거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이다.
박 대통령의 불통과 권위주의적인 성향은 오래 전부터 지적돼 왔다. 이것이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정치인들과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큰 정치판에서 이런 성향은 문제점과 약점이 된다.
그런 까닭에 지금 나타나고 있는 국정 혼란을 취임 초 적응기의 난맥상으로만 치부하기 힘들다. 많은 부분이 박 대통령의 근본적인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박대통령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청와대에 들어가 생활했다. 그는 의식 형성기의 대부분을 청와대에서 보냈다. 제왕적인 대통령을 아버지로 둔 관계로 그는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갑의 위치에 섰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혜와 기술을 배우는 것은 교과서를 통해서가 아니다. 여러 조직생활과 소소한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갈등하고 좌절하며 고민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이것을 자연스럽게 배워 간다. 역지사지라는 중요한 덕목도 결국 갑의 위치에 서기도 하고 약자인 을의 처지에 놓이기도 하면서 깨달아 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 박 대통령에게는 아랫사람 혹은 약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청와대에서 나온 후도 마찬가지다. 그 시절의 기록들을 보면 인간의 대한 배신감을 많이 토로하고 있다. 배신감 때문에 겪었을 고통은 이해하지만 오랜 은둔생활을 통해 그에게 의식의 전환이 있었다는 징후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동화 ‘거지왕자’가 고전이 된 것은 역지사지라는 덕목을 깨닫는 데 백번의 가르침보다 한 번의 체험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모티프로 한 영화들과 드라마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자기와 똑같이 생긴 거지와 옷을 바꿔 입은 에드워드 왕자는 거지생활을 통해 그동안 훌륭한 군주로만 여겨왔던 아버지의 악정을 비로소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왕자와 공주로만 살다보면 ‘평생 갑’의 멘탈리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후진적 정당에서는 이런 멘탈리티를 가지고도 얼마든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지도자로서는 오히려 부적합한 자질일 수 있다. 국정 운영에 약이 아니라 독이 되기 십상이다.
좋은 대통령이 되려면 을의 위치에 설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와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양보와 타협이 가능해진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평면적 인식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타협의 정치는 요원해 진다.
‘평생 갑’ 멘탈리티를 내려놓는 일은 스스로 문제점을 시인하는 데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성격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의 난맥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5년이 걱정되는 이유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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