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 (교육가)
숭고한 민족혼을 기리는 3.1절이 올해로 94주기를 맞이하였다. 종전에는 해외에서의 이 행사에는 주로 연령이 높은 쪽이 참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올해 뉴욕에서는 그와 달랐다. 2월 어느 날 한 청년이 학교를 방문한 것이 그 시발점이다.
그가 바로 뉴욕대(NYU) 1학년 우태영씨였다. 그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그들이 계획하는 맨하탄 센트럴팍에서 열릴 3.1절 행사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청중들은 그것에 대한 각자의 느낌을 말하고, 이어서 질의 응답시간을 가졌다. 이 모임의 결과는 자진하여 행사 참가 희망자들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학교로서는 담당자가 그 준비 작업을 도왔다. 참가할 학생들은 제각기 독립선언문을 나누어 읽기로 하고, 각자 맡은 부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3월1일 당일 오후 2시, 낭독을 맡은 학생들은 센트럴팍에 모여 현장 연습을 하면서, 시작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모든 참가자들이 학교를 조퇴하면서 제시간에 모인 것이다. 이윽고 예정된 식순대로 행사가 진행되면서 그 특색이 여실이 보였다.
우선 이번 행사가 젊다는 것을 여러 모로 느낄 수 있었다. 모임을 계획한 사람들이 19세, 20세이다. 또한 계획의 추진, 준비 상황, 행사의 내용, 뒤처리... 등이 새롭고 싱싱한 젊음을 느끼게 했다. 뒤에서 도운 분들이 있었겠지만, 현장의 모든 일을 남녀 청년들이 제각기 맡아서 하였다. 10여개의 화가(easel)에는 그 사건 당시의 참혹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젊은 그들은 형식을 떠나, 의미 전달 방법을 취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할 문제가 있다. 이 자리에서 낭독한 ‘3.1 독립선언서’는 영어 번역본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낭독한 학생들은 그 뜻을 거의 알고 읽었음이 그들의 표정에 잘 나타났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어로 읽은 것이 ‘타당한 일’이었나 의문이 생길 것이다. 즉 어느 쪽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가? 그 내용의 이해인가, 아니면 겉모습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를 말한다. 이번 행사를 계획한 주최 측도 사전에 이 문제를 놓고 장시간의 토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정에 이른 젊음을 본다. 이들이 행한 행사는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독립선언서’자체가 어렵다고 낭독을 제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원본을 읽기는 너무 힘들다. 그렇다면 영어 번역본을 읽게 하자고 결정하였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 불만을 느끼지만, 오늘에 적응하는 방법이었다고 본다. 주최자들이 젊기 때문에 이 같은 용단을 내린 결과는, 낭독 희망 소년소녀들이 학교를 조퇴하고 현장에 모이게 하였다.
행사가 끝나고 어떤 분이 행사 주최자를 찾아가 악수하면서 말하였다. “어른들이 지금까지 꾸물거리며, 어린이들을 이 행사에 끌어들이지 못하였는데...정말 고마워요.” 필자가 놀란 것도 본교 학생들이 자진해서 이 행사에 참가한 일이다. 아마 그들은 먼 훗날의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한국역사 공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인가 어설퍼서 미덥지 않던 젊은이들의 행사는 새로운 면에 눈을 뜨게 하는 기쁨을 주었다.
한국내, 미국 각 지역에서 행한 3.1절 기념식은 엄숙하고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런데 센트럴팍의 행사는 거의 즐거운 모임이었다. 여러 곳의 엄숙한 만세 삼창은 선열의 희생을 생각하는 울부짖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활짝 웃는 얼굴로 ‘대한민국 만세’를 계속하여 자꾸자꾸 불렀다. 그래도 삼일정신을 이해한다고 볼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해 보자. 엄숙한 만세는 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이고, 웃는 얼굴로 부르는 만세는 선열을 자랑하고 따르겠다는 뜻이라고. 하여튼 태극기를 흔들며 계속하여 부르는 만세가 센트럴팍에 퍼졌다. 젊은이들이 후배들에게 삼일정신을 전하고 싶어서 연 이 행사의 목적을 달성했다. 행사가 끝나고 흩어져서 제각기 갈 길을 향해 걸어가던 어린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이제 막 문을 연 3월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한 줄기 봄의 향기를 느끼며, 젊은 3.1절을 이끈 우태영, 홍승환, 이윤재 님들한테 감사한다. 덕택에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이 풍부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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