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뉴스가 줄을 잇는다.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 의회의 기 싸움으로 나라 재정은 ‘절벽’ 앞이고, 다우지수는 치솟아도 중산층의 살림은 제자리, 그나마 희망을 주던 국민 영웅은 약물복용의 거짓말쟁이로 추락했다.
새 정부 각료후보 인사청문회가 최대관심인 한국은 더 답답하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공금유용, 병역비리 … 한결같은 단골 메뉴다. 모두 가질 만큼 가지고 누릴 만큼 누린 대한민국의 ‘1등’들인데 이렇게까지 그악스럽게 자기 이익을 챙겨야 했는지, 아니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까지 간 건지 답답하고 헷갈린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게 인간의 욕심이라는 사실은 최근 삼성가의 유산 싸움으로도 확인이 되었다. 포브스 선정 세계 69위의 부자, 자산 130억 달러의 부호가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 재판까지 하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뚝 떼어주지’ 싶은 건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의 감상인가. 유산은 고사하고 재판 인지대로 들어갔다는 127억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도 보통사람들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질 지라도 사람의 욕망을 다 채울 수는 없다”(법구경)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인가 보다. 하나를 가진 사람은 10을 갖고 싶어서, 10을 가진 사람은 100을 갖고 싶어 집착하느라 이미 가진 것도 즐기지 못하는 어리석음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다.
‘소유’에 맞춰진 인생의 나침반을 ‘존재’로 돌릴 수는 없을까. 소유욕에서 벗어나 존재 자체를 즐길 수는 없을까. 최근 눈길을 끄는 싱그러운 뉴스들이 있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생명체로서 스스로에 충실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들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한달쯤 전 캔사스 시티. 노숙자인 빌리 레이 해리스는 동냥 통에서 낯선 물건을 발견했다. 동전들 사이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알이 큰 것으로 봐서 진짜라면 꽤 돈이 될 물건이었다. 주인이 얼마나 애타게 찾을까 생각한 그는 반지를 잘 보관해두기로 했다.
그날부터 이틀 동안 새라 달링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약혼반지가 사라졌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손가락에 발진이 생겨 반지를 뽑아 지갑에 넣었다는 사실, 그리고 지갑 속 동전을 어느 노숙자의 동냥 통에 털어 넣었다는 사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는 노숙자를 찾아갔다.
“내가 굉장히 소중한 걸 준 것 같은 데요” 하자 “반지 말인가요? 내가 가지고 있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적 같았어요. 반지를 되찾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탐욕과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 하지만 세상에는 이 모두에서 비켜선 선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새라는 말했다. 빌리의 정직성에 감동한 새라의 약혼자는 그를 돕기 위한 모금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90일간 1,000달러 모금을 목표로 했는데 18일 만에 이미 17만5,000달러가 넘었다. 선행은 다른 선행을 부르는 법 - 캔사스 발 ‘선행 바이러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북가주에 사는 뉴트 월러스라는 노인의 삶도 싱그럽다. 93세인 그는 신문배달을 한다. 지역 신문인 윈터스 익스프레스가 주1회 발행되는 수요일이면 그는 배달에 나선다. 66년째 하는 일이다. 신문은 사실 그의 삶 자체이다. 1947년 신문사를 인수한 후 그는 수십년 동안 기사 작성부터 인쇄, 배달까지 도맡아 했다. 1983년 아들에게 발행인 자리를 물려주고 난 후 한동안 칼럼을 쓰다가 지금은 배달만 돕고 있다.
신문을 매개로 한 평생 같이 지내온 이웃주민들과 얼굴을 마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에 그는 신문배달을 그만 둘 수가 없다. 은퇴 후 남들은 사냥이나 골프를 즐기지만 그는 그런데 관심이 없다. 자신이 가장 즐기는 일로 소박하면서도 즐거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세계 최고령 신문배달원이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소유가 필요했다. 먹어야 하고 가져야 했다. 그런데 존재를 위해 필요하던 소유물이 지금은 거꾸로 존재를 속박하고 있다. 돈 있는 자는 돈에, 권력 있는 자는 권력에 끌려 다니느라 온전히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달라진다. 어떤 종교든 수도자들의 삶은 청빈이 특징이다. 소유를 덜어내는 만큼 존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숙자 빌리, 최고령 신문배달원 … 세상이 부러워하는 ‘1등’은 아니지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묵묵히 살아가는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들이다. 인생의 나침반을 ‘존재’에 맞췄다는 점에서 삶의 고수들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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