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한국은 줄곧 하위권을 맴돈다. 불과 몇 십 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절대빈국이었다. 지금은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나드는 그런대로 잘 사는 나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행복도는 가난했던 시절보다 못하면 못했지 결코 높아지지 않았다. 집권세력과 언론에 의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세계 몇 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주문은 행복감을 높이기는커녕 공허감만 키워주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소득이 올라도 항상 무언가 두 개는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그래서 물질로 얻는 행복의 지속적 향상은 불가능하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가장 극명하게 확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인간은 기본적인 생계가 해결됐다고 해서 쉽사리 행복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것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이다. 과시욕구가 작동하면 이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더 많은 것이 필요해지고 그렇지 못한 상황은 좌절과 불행감을 안겨준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느끼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은 행복감을 비틀거리게 만든다. 스스로에 대해 확고한 만족감을 갖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는 갖추면 행복해지는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갖추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불행의 조건’이 늘어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지적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다시 한 번 약속하며 취임했다. 그는 캠페인 기간 내내, 그리고 당선된 후에도 ‘국민행복’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입에 올렸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대선공약인 가계부채 해소를 위한 국민행복기금 17조원을 짜내기 위해 고심해 왔다.
경제위기 속에서 벼랑 끝까지 몰린 국민들의 부채를 탕감해 줌으로써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국민들의 행복감을 고양시키기는 힘들다. 빚을 탕감 받으면 수혜자 입장에서는 짜릿하고 고마운 일이겠지만 본래 그런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리고 전 국민의 행복감과도 별 상관이 없다.
정말로 국민들의 행복을 고민한다면 먼저 대한민국에서의 행복과 불행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경제성장과 소득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은 항상 불행감이 흘러나오도록 잘못 설계된 사회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서로 다투고 거기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무한경쟁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다. 경쟁은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된다. 다만 과정의 공정성은 담보돼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무한경쟁 시스템은 과정 불평등이라는 심각한 오류를 안고 있다.
그러니 패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실패를 흔쾌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국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지수가 이웃인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것은 불공평한 경쟁사회가 낳은 부작용이다. 게다가 경쟁에서의 낙오는 인생의 실패로 인식되고 실제로도 종종 그렇게 귀결된다.
언제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질지 몰라 항상 불안한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기 힘들다. 여기에 국민행복을 위한 해답이 있다. 대한민국을 짓누르고 있는 만성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 주는 것이 행복시대를 여는 첫 걸음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식은 복지의 확충이다. 밑으로 떨어지더라도 안전하게 받쳐줄 그물망이 밑에 드리워져 있다는 믿음은 삶의 동요를 막아준다.
복지가 튼튼한 국가들일수록 국민들이 행복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 국민행복을 원한다면 과감하게 복지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를 위해 부자증세 저항도 돌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일부 복지공약을 폐기해야 하다는 목소리가 집권세력 안에서 새어나온다. 약속한 복지를 다 실천해도 조금 행복해질까 말까인데 이것마저 손바닥처럼 뒤집는다면 행복은커녕 속았다는 배신감에 국민들의 불행감은 한증막의 수은주처럼 급속히 치솟게 될 것이다.
사회가 건강하고 선량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도 긍정적일 수 있다. 말로만 외치는 행복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갈지를 대통령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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