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올림픽 효자종목으로 사랑받아 온 레슬링이 퇴출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은 씁쓸하다. 나이가 든 한인들이라면 1976년 여름 몬트리올로부터 날아든 한국의 첫 금메달 낭보에 짜릿함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것이다. 첫 금메달의 주인공은 레슬링 자유형의 양정모였다. 양정모의 금메달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일깨워 준 쾌거였으며 이를 시작으로 한국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줄줄이 따내며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지닌 레슬링이 IOC 결정에 따라 2020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에서 제외된다. 아직은 실낱같은 구제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현실성은 희박하다. 육상과 함께 올림픽을 상징하는 대표 종목으로 꼽혀 오던 레슬링이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위상만 믿고 시류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한 결과다.
IOC의 결정은 레슬링이 너무 재미없으며 그 결과 젊은 층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판단에서 내려진 것이다. 퇴출 사태를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레슬링으로서는 충격적이고 억울하겠지만 이것이 경쟁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해 변화를 게을리 해서는 미래가 없다. 성공체험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휴브리스’(hubris)라고 불렀다. 그는 이것을 몰락으로 가는 길로 봤다.
휴브리스가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기업들이다. 적어도 100년은 갈 것 같던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고꾸라지는 것은 성공체험의 우상화라는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한 때 가장 잘 나가던 기업인 델은 몇 년 전 경영이 어려움에 빠지자 창업주인 마이클 델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CEO로 컴백한 델은 그러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주가는 지난 1년 사이에만 20%가 빠졌다.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하며 마이더스 손으로 불렸던 마사 스튜어트도 죽을 쑤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녀가 창업해 직접 CEO를 맡고 있는 ‘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 미디어’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살림의 여왕’이라는 찬사가 무색할 정도이다. 자기가 세운 기업을 망치고 있는 창업주들의 이름을 열거하자면 베스트 바이의 리처드 슐츠, 아메리칸 어패럴의 도브 차니, 블랙베리의 마이크 라자리디스 등 끝도 없다.
이런 창업주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달라진 시장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비전이 없다는 점이다. 창업과 미래성장에는 다른 패러다임과 전략이 필요한 데도 과거의 성공에 갇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창업주 CEO들은 대개 무능이 드러나도 별다른 견제를 받지 않는다. 창업주로서의 명성과 지분은 이들을 쉽게 축출할 수 없도록 막아주는 방패가 된다. 무능이 방치되면서 기업은 더 곪아가고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창업주들의 견제 받지 않는 무능의 폐해가 아무리 크다 해도 권력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권력이 무능하면 국민은 고통을 받는다.
공식 출범을 하기 전인데도 박근혜 정부의 준비작업에서 벌써부터 휴브리스의 조짐이 눈에 띈다. 인사 스타일과 내세우는 구호, 그리고 경호실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킨 조치 등을 보면 시대의 흐름과 잘 맞지 않는다. 여전히 아버지 시대의 가치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박정희를 향한 일부 유권자들의 뿌리 깊은 향수 덕에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나라를 이끌어 가는 일에서는 아버지의 신화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박정희의 유산을 창업자로서의 발자취라 인정한다 해도 21세기 대한민국은 그 때와는 다른 철학과 비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아탈리가 자신의 책에 인용해 유명해진 8세기 돌궐족의 명장 톤유쿠크의 묘비명이다. 박근혜가 진정 성공을 원한다면 아버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아버지가 쌓은 성에 안주하려 들 경우 앞으로의 5년은 박근혜 자신과 국민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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