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간 이탈리아에 살면서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한 일본인 시오노 나나미는 책 서문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적잖은 사료가 보여주듯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들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이라고 로마인들 스스로도 인정했다. 그러데 왜 로마인들만이 그토록 오래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일까?”
‘로마인 이야기’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나나미는 로마사회의 관용과 포용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로마는 자신과의 전쟁에게 패한 민족일지라도 차별 없이 시민권을 주는 정책을 통해 인재를 얻고 나라를 키웠다. 이런 관용과 포용의 정신은 로마를 인류의 첫 제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반면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그리스의 경우 민주주의의 발상지라는 명예는 얻었지만 제국으로 뻗어 나가는 데는 실패했다. 순혈주의에 빠져 배타적인 태도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조차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민권을 받지 못했을 정도이다.
그리스는 “시민은 피를 나눈 사람이어야 한다”는 외골수에 빠져 있었지만 로마는 ‘피를 나눈 사람’이 아니더라도 ‘뜻이 같은 사람’이면 시민으로 받아들였다. 다양한 핏줄과 배경의 이민족들은 로마의 시민으로서 제국 건설에 필요한 두뇌와 노동력을 제공했다. 로마제국의 개방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시기에는 이방인들이 잇달아 황제 자리에 앉았을 정도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도 로마와 비슷한 다양성과 포용을 바탕으로 힘을 키워왔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세계 각지로부터 다양한 재능과 인적 자본을 받아들여 오늘의 미국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다양성과 포용이 항상 순탄한 길을 걸어 온 것만은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경제가 휘청거릴 때면 어김없이 ‘순수한 정체성’을 앞세우는 세력들에 의해 다양성과 포용이 공격당하는 사이클이 반복돼 왔다. 미국이 포용을 저버리고 배타적인 태도로 돌아선 시기는 미국의 위기가 심화된 시기와 겹쳐진다.
미국사회의 포용지수를 테스트 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이민개혁안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론이 최근 부쩍 호의적인 쪽으로 형성되고 있다. 1,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서류미비 이민자들을 양지로 끌어내자는 내용의 이 개혁안은 그동안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혀 왔는데 최근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까지 지지 쪽으로 많이 돌아서면서 법제화 전망이 밝아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보수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텍사스주의 기업인들과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까지 이민개혁안 찬성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나타난 ‘가공할 히스패닉의 정치력’에 대한 자각 때문인지, 아니면 실질적으로 이미 미국사회의 구성원이 돼 있는 이들을 껴안아야 할 경제적 이유를 느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분위기는 미국의 장래와 관련해 희망적인 조짐이라 볼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끼쳐 온 에이미 추아 예일대 법대교수(그는 한 신문기고로 ‘타이거 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는 ‘제국의 미래’라는 저서에서 “역사 속에서 세계를 제패했던 제국들은 포용의 전통이 필수적이었다. 제국의 운명은 그 시기의 상대적인 포용지수에 의해 좌우됐다”고 지적했다. 이민자의 나라로 성장해 온 미국이 불포용으로 돌아섰을 때 세계인들로부터 외면을 당해왔다는 것이 그의 관찰이다.
추아 교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미국이 여전히 ‘팍스 아메리카나’를 꿈꾸고 있다면 포용지수를 지금보다 한껏 더 높여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민개혁안 통과 전망이 밝아진 것은 미국이 다시 올바른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아주 작지만 긍정적인 신호이다.
관용과 포용이 커다란 나라들의 흥망성쇠만을 좌우한 것은 아니다. 나라는 작아도 개방성을 바탕으로 강한 나라를 만들어 온 강소국들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의 모델이 될 만한 나라들이다. 단일민족이라는 그릇된 환상에 빠져 핏줄의 순수성만을 따지고 인적 자본의 유입을 막으려 해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생존의 길을 갈 것인가, 쇠락의 길을 갈 것인가. 선택과 해답은 자명하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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