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 터울인 하바 형제가 감독으로 맞붙었던 47회 수퍼보울에서 형인 잔이 이끄는 볼티모어 레이븐스가 승리했다. 잔 하바는 4번 시드로 어렵사리 플레이오프에 오른 팀의 전력을 극대화하는 지도력으로 위기의 순간들을 넘어서며 언더독으로 평가되던 레이븐스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경제지인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 어드바이저 가운데 한 명인 리더십 전문가 도브 사이드맨은 최근 몇 년간 수퍼보울에서 승리한 팀 감독들에게서 ‘경청의 리더십’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잔 하바를 그런 감독의 하나로 꼽는다.
풋볼은 위계성이 강한 스포츠이다. 그래서 감독의 강력한 리더십 없이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는 것이 뿌리 깊은 인식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던 전설적인 풋볼 감독 빈스 롬바르디는 수많은 감독들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수직형 리더십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이드맨의 진단이다. 기술의 발달로 감독들의 전술과 전략이 갖는 차별성이 거의 사라진 데다 사회 전반의 가치관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잔 하바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선수들에게 항상 ‘우리는 팀을 공동 소유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노력한다. ‘마이 웨이’는 내 방식이 아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며 귀를 기울이는 이런 지도자를 사이드맨은 ‘21세기형 리더’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경청은 비단 21세기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훌륭한 리더로 평가받는 인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자질이다.
위대한 성군 세종을 가능케 했던 것도 바로 경청의 리더십이었다. 세종은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는 자리를 항상 “의논하자”는 말로 시작했으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잘 의논하여 아뢰라”는 말로 신하들의 토론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그리고는 그들의 토론과 직언에 귀를 기울였다.
세종은 잘 듣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신하들이 눈치를 보며 대세에 따라가려는 모습을 보일 때면 이를 마땅치 않아 했다. 그래서 “과감한 말로 논쟁하는 자를 보지 못하겠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세종은 신하들이 쓴 소리와 반대 의견을 내도록 요구했다.
상황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하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 정직한 신하야말로 곧 뛰어난 인재라는 세종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쓴 소리 듣기를 마다하지 않는 열린 마음과 경청의 자세는 동전의 앞과 뒤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지난 한 달간 보여준 모습에 많은 국민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의 리더십이 경청이나 겸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검증의 칼을 들이댄 언론을 향해 애꿎은 화풀이를 해대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과정에서 드러난 난맥상은 앞으로 5년을 걱정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인사파동 한 번 가지고 웬 수선이냐 할지 모르지만, 말 한마디에서 한 사람의 모든 것이 읽혀지듯 총리 인선실패는 박근혜 스타일의 DNA에 관해 아주 많은 것을 얘기해 주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성장 배경 탓인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겪은 불행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신뢰를 주지 않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다 지나치다 싶은 자신감이 더해지다 보니 종종 독단적으로 비춰진다. 그래서 그의 주위에는 직언을 하는 인물들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도 이럴진대 권력의 실제 주인이 되고 난 뒤에는 어떨지 사뭇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박 당선인에게 시급한 것은 귀를 열어 놓고 쓴 소리 듣기를 마다하지 않는 경청의 자세이다.
일단은 국민들의 68%가 박 당선인에 대해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 정권들도 항상 이런 기대와 희망 속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끝이 어떠했는지는 이미 보아온 그대로이다.
이런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면 ‘불통’ ‘밀실’ ‘나 홀로’ 같은 수식어가 붙는 리더십과 결별해야 한다. 리더십처럼 오랜 세월 몸에 밴 스타일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부단히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야 한다.
풋볼 필드 위에서의 성공에도 경청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세상이다. 하물며 나라를 이끄는 일에는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국가 지도자의 ‘마이 웨이’는 국정 실패로 가는 ‘하이웨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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