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며칠 전인 1월 28일, 19세기 영국문학의 대표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소설 ‘오만과 편견’이 출간 200주년을 맞아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미국 볼티모어 가우처 대학은 31일까지 오만과 편견 200주년 기념전시회를 열어 소설 초판을 비롯해 작가가 남긴 편지와 문서, 그림 등을 대중에 공개했고 북미지역 제인 오스틴 소사이어티는 미국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에세이 경연대회를 연다.
제인 오스틴은 왜 이렇게 미국을 비롯 전 세계에서 시대를 건너 사랑을 받을까.
소설 ‘오만과 편견’은 시골 롱본에 사는 다섯딸을 둔 베넷 일가 이야기로 첫째딸 제인과 둘째딸 엘리자베스는 인근에 이사 온 청년 빙리와 그의 친구 다아시와 각각 사랑에 빠진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좋아하나 엘리자베스는 그가 오만한 남자라는 인상을 받고 거절한다. 그러나 다른 남자들을 만나면서 그가 너그럽고 인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그동안의 편견을 고치고 그와 맺어진다.
사실 영국 중산층 여인들의 평범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쓰인 ‘오만과 편견’을 처음 읽을 때는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왜 혼기에 찬 여성들은 돈과 지위가 있는 안정된 남자를 만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둘 까,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여자 팔자가 달라진다는 사고방식이 속물적으로 보였었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회적 계급과 신분을 중시하는 시대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상류층으로의 진입을 꿈꾸는 여성의 소망과 사랑의 심리에 별로 공감 못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든 지금 ‘오만과 편견’을 읽으니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다아시가 아름다운 정원을 지닌 대저택의 소유자인 것이 엘리자베스의 결혼 결심에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서 읽을 때마다 보이는 것이 많아지는데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우리 자신의 욕망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것이다.
재작년 봄 런던에 갔을 때 제인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을 썼던 바스라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런던 팬딩턴 역에서 기차로 한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었지만 결국 윈저성 관광을 택하고 바스는 포기해야 해 못내 아쉬웠었다.
사실 작가의 생가나 잘 가던 찻집 같은 곳에 가면 기분이 달라진다. 작가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사색의 장소에 가면 웬지 작가의 영혼이 머물러 있고 체취를 느낄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찾아보면 이런 곳이 많다.
맨하탄을 비롯한 뉴욕시에도 물론 많지만 조지아 애틀랜타에 제인 오스틴과 버금가는 마가렛 미첼(1900~1949)이란 여류작가가 있다. 남북전쟁과 전후 재건시대를 배경으로 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쓴 마가렛 미첼은 미국인들이 무척 사랑하는 작가이다.
작가 미첼은 애틀랜타에서 살고, 죽고, 묻혔으며 1936년 여기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출판했다. 애틀랜타에는 오는 6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판 77주년을 맞아 ‘윈디’ 매니아들이 모여 조지아주 마리에타에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뮤지엄에서 축제를 열고 미첼의 묘소도 참배한다고 한다.
이 소설은 남부 조지아 주 타라 농장의 딸 스칼렛이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바람 앞에 모든 것을 잃는 역경 속에서도 강인하게 일어서는 모습과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만만한 남자 레트 버틀러의 이야기다. 영화가 소설보다 더 유명한데 비비안 리(스칼렛 오하라 역)와 클라크 게이블(레트 버틀러 역)이 나온 영화를 모두 보았을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스칼렛 오하라가 폐허가 된 타라 농장에서 불타는 노을을 배경으로 “뭐든지 내일 생각해야지.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를테니까”하고 외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허무, 절망 속에서 생존을 위한 불굴의 의지와 희망을 말하는 이 소설은 가장 미국적인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 자, 이만 하면 요즘 같은 시기에 마가렛 미첼의 영혼이 서린 애틀랜타를 가볼만 하지 않은가. 그럴 여유가 없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책이나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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