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9일 한글날이 금년부터 국경일로 부활한다. 22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지난해 12월24일 국무회의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격상시키는 안을 통과시켰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선포했다. 한글날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 이승만대통령에 의해 국경일로 선포되어 공휴일로 지켜오다가 1991년 노태우정부에 의해 ‘국경일이 너무 많으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10월 1일 국군의 날과 10월9일을 국경일에서 제외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알기 쉬운 글을 지은 세종대왕과 이를 선포한 기념일이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은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된 이후 문화관광부가 조사한 자료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한글날이 언제인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2005년 90%, 2009년 88%, 2012년 64%가 안다고 답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내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이화대학 여름학교로 유학을 간 적이 있었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 온 딸이 전하는 이런저런 유학경험 가운데 한글날에 관한 대목도 있었다. 한번은 한국어시간에 선생이 “한글은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는 것. 딸에게는 너무나 놀란 ‘사건’이었다. 자기나라의 글을 만든 창제자를 알고 있는 나라는 이 세상에서 한국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딸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부부의 극성 때문에 한국말과 한글을 그런대로 잘 익히고 있었다. 한국말과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집안에서는 영어를 거의 쓰지 않았으며 교회 한글학교를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보냈다. 영어가 편한 딸에게는 한국말을 배우는 일이 큰 고통이었지만 그런대로 잘 해내다가 이화대학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딸은 선생으로부터 한글날이 국경일이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 “우리나라에서는 워싱턴과 링컨대통령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워싱턴이나 링컨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분인데 어떻게 해서 한글날이 국경일이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선생은 “한국어와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써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글은 어느 나라 글보다 쓰기 편하고 읽기 쉬울 뿐 아니라 그 구조가 과학적이어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이라고 자부한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발음에 있어서 영어나 중국어처럼 예외가 없고 모음과 자음을 모아 낱말을 구성하는 절차가 아주 단순하고 쉽다는 것을 말한다. 요즘 글로벌 시대에 문화수출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한글이 언젠가 한국의 문화수출품 가운데 으뜸이 되지 않을까? 언어는 있으나 글을 갖고 있지 않는 종족들의 수가 아직도 수천이 넘는다고 한다.
한글은 이들에게 ‘문맹으로부터 해방’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성경번역 선교에도 그 어느 글자보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수 백 명의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사들이 토착어는 있는데 글자가 없는 종족들을 위해 글자를 만들어 성경을 원어로 번역하고 있다. 한글은 알파벳보다 훨씬 쉽게 읽고 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한글은 세계화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내가 보기에 한글에도 단점은 있다. 구라파 언어나 중국어 등에서 쓰여 지고 있는 발음 가운데 많은 부분들이 한글로는 표기하기가 힘들다. 한글이 글로벌 글자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들을 보완하면 어떨까 한다. 지금 글로벌 언어로 자리 잡고 있는 영어에 있는 f, l, v, z 등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한글이 글로벌 글자로 알파벳과 경쟁하려면 이 발음들을 표기할 수 있는 자음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ㅎ으로 f’, ‘ㄹ으로 l’, ‘ㅂ으로 v’, ‘ㅈ으로 z’를 발음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아니면 훈민정음 반포 때 28글자 가운데 있었으나 그 후에 탈락된 4글자를 다시 살리면 어떨까?
우리 딸 말대로 아무튼 세종대왕은 위대한 분이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르는 자기나라 글의 저자를 갖고 있고 알고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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