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시장을 주무르던 소니와 샤프, 파나소닉 등 일본의 거대 전자기업들이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천문학적 액수의 손실도 손실이지만 별달리 뾰족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첨단의 상징으로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기업들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일까.
다양한 분석들이 나온다. 시대의 조류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도 원인이고 앞서 가고 있는 기업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지나친 자만심도 한몫했다. 그러나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결론이 내려진 비즈니스 모델인데도 이를 과감히 던져 버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감당키 힘든 상황을 초래한 것이 더 직접적인 이유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고의 두뇌들과 인재들이 모여 있는 최고의 기업들이 왜 이런 패착을 둬 몰락을 자초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실수는 똑똑함과 별 관계가 없다. 결코 망하지 않을 것 같던 수많은 기업들이 이런 전철을 밟으며 사라져 갔다.
우리는 손실을 아주 뼈아프게 받아들이는, 그래서 되도록 이를 피하려는 강한 성향이 있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이런 손실회피 성향 때문에 조금만 봐도 될 손해를 키우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인간의 마음은 같은 크기의 이익과 손실을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져 있음이 행동주의 경제학을 통해 밝혀졌다. 한 연구에 따르면 손실로 인한 고통은 이익으로 인한 기쁨보다 통상 2.5배 더 강력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두 명이 같은 금액으로 투자를 한 경우를 상정해 보자. 한 투자가는 1년 내내 투자를 잘해 10만달러까지 벌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실수를 해 9만달러를 날렸다. 그래도 1만달러는 번 셈이다. 다른 투자가는 아주 조금씩 투자 수익을 올려 연말 정산을 해 보니 5,000달러 수익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둘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수익의 액수는 1만달러가 더 많지만 행복의 크기는 손실의 고통이 적었던 5,000달러가 더 크다는 게 행동주의 경제학의 결론이다.
이처럼 손실이 안겨주는 고통과, 그래서 이것을 회피하려는 성향은 종종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기업들이 안 되는 사업에서 미련 없이 손을 떼야 하는데도 계속 붙잡고 있다가 망하는 것은 그럴 경우 안게 될 손실을 회피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이른바 ‘본전생각’이 들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미적거리다 실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어리석음은 기업뿐 아니라 투자의 세계에서도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다. 대부분의 개미투자가들이 실패를 하는 것은 손실이 발생했을 때 미련 때문에 미적거리고, 반대로 이익이 났을 때는 너무 성급히 처분하기 때문이다.
투자에서 성공하려면 손해가 날 경우 본전생각의 유혹을 억누르고 액션을 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그만큼 손실회피 성향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본전생각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들은 경제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런 사례를 들자면 끝도 없다. 심리학에서는 오래된 연인들이 헤어지기 힘든 이유로 이런 손실회피 성향을 들기도 한다. 사랑을 가꾸어 오는데 들여온 금쪽같은 지난 세월과 금전적, 감정적 투자를 생각한다면 이별은 결코 섣불리 내릴 결정이 아니다. 그래서 연인들은 미련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도박에 빠지면 쉬 헤어나지 못하는 것 역시 본전생각 때문이다. 잃은 돈 생각 때문에 과감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결국은 패가망신에 이르게 된다. 같은 이유로 부부관계의 불행이 커지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끈질기게 고개를 드는 본전생각만 잘 다스릴 줄 알아도 살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버려야 할 때 버릴 줄 아는 것은 잘못을 스스로 인정할 줄 아는 용기이며 이것을 속히 바로 잡는 현명함이다. 모든 손해와 불행을 다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미지 컨트롤을 잘해야 손실과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잘 나가던 기업들이 나자빠지고 멀쩡해 보이던 인생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던져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손해도, 상처도 줄일 수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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