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기 취임연설에 대한 평가는 양극화된 워싱턴, 양분된 여론을 딱 닮았다. 눈물 흘리며 감격하는 진보진영에선 ‘진정한 리더’의 귀환에 환호하고 오바마의 ‘좌파 본색’이 드러났다고 비난하는 보수진영은 분열을 조장하는 유세 연설이라고 깎아 내린다.
그러나 오바마의 표현대로 “10년의 전쟁이 끝나가고 경제의 회복도 시작된” 무덤덤한 시대를 반영하듯 특별히 웅변적이지도, 특별히 감동적이지도 않은 연설을 듣고 난 후 한 가지 사실엔 모두가 동감했다 : 오바마가 달라졌다!
21일, 앞으로 4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던 오바마는 초당적 정치의 실현을 믿는 젊은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진보적 미국과 보수적 미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단합된 미국만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외치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상원의원의 열정도, 2009년 설득과 화합으로 워싱턴의 양극화 정치를 변화시키겠다고 약속했던 40대 초선 대통령의 확신도 더 이상 찾기 힘들었다. 대신 ‘초당적 합의’라는 신기루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주어진 현실에서 단호하게 새 출발을 선언하는 50대 재선 대통령이 있었다.
2010년 중간선거 패배 후 사사건건 반대하는 공화당에게 계속 밀리다 2012년 대선 승리로 정치적 우위를 확보한 오바마의 이번 연설엔 자신감과 함께 다시는 선거에 나설 필요 없다는 해방감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그는 1기에서 신중하게 절제해온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다양한 진보 어젠다를 거리낌 없이 제시했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국민으로 함께 행동해야 한다”며 국민적 단합을 강조했지만 초당적 합의를 호소하지는 않았다. 공화당을 향한 화해의 손길도 내밀지 않았다. 오히려 “절대주의를 원칙으로 오해해서는 안 되며, 구경거리를 정치와 대체하거나, 욕설비방을 합리적 논쟁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극우보수의 극단적 태도를 지적하며 간접적이지만 공화당을 질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의 2기 취임연설을 ‘리버럴 성명서’라고 표현했다. 큰 정부에서 빈부격차, 이민과 여성과 동성애자 등 소수계의 평등권, 사회보장제도와 기후변화, 총기규제와 전쟁 없는 평화에 이르기까지 진보의 신념들이 조목조목 설득력 있게 포함되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생명과 자유와 행복추구를 위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창조자로부터 부여받았다”고 독립선언서에 명시된 ‘자명한 진리’를 상기시키며 오바마는 연설을 시작했다. “신의 선물로 받은 개인의 자유는 인간에 의해 성취되어야 한다”고 전제한 그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집단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투적인 진보가치관을 선언하는데도 별로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줄어드는 소수만이 잘 살고 늘어나는 다수는 근근이 살아야 한다면 성공한 국가가 될 수 없다…미국의 번영은 중산층에 달려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면서 캠페인 내내 강조했던 ‘중산층을 위해 싸우는 전사’의 투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번 연설에서 가장 강하게 울린 내용은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란 구절을 5차례나 반복하며 평등권 보호에 대해 이 세대 모든 사람들이 지고 있는 책임을 일깨워준 부분이다 :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아내와 어머니와 딸들이 자신의 노력에 맞는 평등한 소득을 얻을 때까지.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동성애 형제자매들이 법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때까지.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어떤 시민도 투표권 행사를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지 않을 때까지.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미국을 아직도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부단히 노력하며 희망에 부푼 이민들을 환영할 더 좋은 방법을 찾을 때까지, 명석한 젊은 학생들과 기술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쫓겨나는 대신 우리의 노동력에 합류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디트로이트 거리에서 아팔라치아 언덕, 뉴타운의 조용한 골목길까지 우리의 모든 아이들이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안전하게 보호받는다고 느낄 수 있을 때까지”
힘찬 웅변을 통해 명확하게 제시된 오바마 2기의 의미와 오바마의 역사 유산 중에는 이렇게 우리도 포함되어 있다.
강화된 정치적 입지에 기대어 대 공화당 전략을 바꾸고 자신있게 닻을 올린 오바마의 2기가 언제까지 순항할 수 있을지는, 그러나 미지수다. 야심찬 진보 어젠다의 실현 여부는 모두 공화당과의 타협에 달려있다. 달라진 대통령에게도 ‘초당적 합의’ 없는 목표달성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니까. 백악관으로서는 ‘다행히’ 공화당은 아직도 전열을 재정비하지 못한 상태다. 재정절벽과 부채한도증액 협상을 통해 이미 두 번이나 백기를 들었다.
집권2기의 로드맵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할 2월12일의 국정연설이 오바마에겐 잔뜩 몰아세운 공화당을 향해 다시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터프해진 오바마가 공화당의 불안과 반발을 어떻게 달래고 어르며 2기 어젠다를 실현해 나갈 것인지가 당분간 워싱턴 정치게임을 지켜보는 가장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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