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을 때 이 사업의 졸속성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백년대계라 일컬어지는 국가사업이라면 충분한 검토와 토론을 통해 타당성을 철저히 살펴보고 예산과 설계 등 기본적인 작업을 마무리한 후 착수하는 것이 순리다. 특히 자연의 모습을 바꾸는 사업에 꼼꼼한 환경영향 조사가 선행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이런 정석과 순리가 무시된 채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됐다. 설계와 공사가 같이 진행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마치 쪽 대본을 받아 드라마를 찍듯 국가의 대역사를 추진한 것이다. 이 모습이 하도 기가 막혀 “한 손으로는 자동차 매뉴얼과 지도를 보면서 나머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운전자를 보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고 비판한 것이 칼럼의 내용이었다.
이 칼럼과 관련해 “토목공사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으면서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는 어느 독자의 지적도 받았다. 전문지식이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비판의 요지는 4대강 사업의 타당성과 효과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필요한 절차를 생략하고 무시하려는 조급함과 졸속이 가져다 줄 재앙에 대한 우려였다. 결국 이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주 4대강 사업 16개 구간 보중 15개에서 부실이 발견됐으며 수질도 악화된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 사업을 ‘총체적 부실’로 결론짓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사업의 문제점을 애써 외면했던 감사원의 이번 감사결과는 그들이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드러내 주는 것이긴 하지만 일단 22조원의 혈세가 들어간 사업이 총체적 부실로 드러난 만큼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시멘트가 채 마르기도 전 곳곳에서 부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4대강 사업은 잘못된 국책사업의 전형이다. 지도자 한 사람의 개인적 욕망과 잘못된 판단 때문에 천문학적인 혈세가 낭비되고 소중한 자연과 생태계에 회복하기 힘든 상흔을 남겼다. 설사 이 사업이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처럼 타당성이 있는 것이라 해도 첫 삽을 뜨기 전까지는 고민과 숙고를 거듭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의 어처구니없는 부실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고정관념과 자기 생각에만 갇혀 있는 지도자는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퓰리처상을 받은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 바바라 투크먼은 나라를 망치는 지도자들의 특성을 4가지로 꼽는다. 첫 번째는 폭력성이고 두 번째는 지나친 야심, 그리고 세 번째는 무능과 타락, 마지막으로 독선과 아집이다.
나쁜 지도자는 어느 한 가지 유형에 속한다기보다 보통 2~3개의 문제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야심은 많은데 능력은 뒷받침이 안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또 이런 지도자들은 대개 독선과 아집에 많이 사로잡혀 있다. 게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하다면 이것은 최악의 조합이다.
독재국가에서만 이런 지도자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민주체제에서도 이런 문제적 지도자들이 똑같이 발견된다는 것이 투크먼의 관찰이다. 국민들이 위임해준 권력을 자기 개인의 것인 양 착각하고 분별없이 휘둘러 대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공명심이 많은 사람이다. 대통령 재임기간 중 뭔가 한건 했다 싶으면 기자회견 등 이벤트를 통해 이를 홍보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 준 것은 청계천 사업이었다. 작은 성공에 도취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남길 큰 성공을 꿈꾸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청계천 사업의 메가 버전인 대운하 사업에 집착했다. 이것이 저항에 부딪히자 4대강 사업으로 이름과 내용을 살짝 바꿔 자신의 야망을 밀어붙였다. 이런 거대사업을 짧은 임기 내에 끝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그의 독선과 공명심을 보여준다.
앞서 가던 자동차 뒷 범퍼에 붙어 있던 스티커의 인상적인 문구가 떠오른다. “We do not inherit the Earth from our ancestors, we borrow it from our offspring.”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사는 이 땅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자손들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니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일반 정책들이야 문제점이 드러날 경우 고치거나 없애면 되지만 자연을 바꾸는 일은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더 할 수 없는 신중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투크먼은 문제투성이의 지도자들이 수천년의 역사 내내 계속 이어져 왔다며 이것을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불렀다. 그런데도 많은 지도자들이 이런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 지금도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는 운이 좋은 편이다. 어렵사리 역사로부터 배울 것도 없이 전임자를 반면교사로만 삼아도 ‘바보들의 행진’에 합류하는 어리석음은 피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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