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장 장수하고 있는 TV 쇼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는 NBC-TV의 체중감량 리얼리티 쇼 ‘더 비기스트 루저’(The Biggest Loser)이다. 지난 2004년에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8년 넘게 이어오고 있으니 부침이 극심한 TV 쇼로서는 상당히 드문 일이다. 시청자 1,000만을 넘던 예전의 인기만은 못하지만 지금도 매주 650만명의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채널을 맞춘다.
이 프로그램은 체중감량을 원하는 초고도 비만인들이 전문 트레이너와 함께 살빼기를 하는 혹독한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이다. 매주 목표치 달성에 실패한 참가자들을 탈락시키며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참가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의 체중감량에 성공한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 한국 TV들도 고도비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방영하고 있는데 그 원조가 ‘더 비기스트 루저’이다.
미국은 뚱뚱한 사회다. 이런 체중감량 리얼리티 쇼가 10년 가까이 공중파 방송의 프라임타임 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비만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고민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만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보편화 된 기준은 BMI라는 체질량지수다. 30이 넘으면 비만, 20 미만은 저체중, 20~25는 정상, 그리고 25~30은 과체중으로 분류한다. BMI 25이상인 과체중 미국인 비율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높다.
이런 이유로 비만은 사회적 문제로 치부돼 왔으며 비만에 대한 편견도 깊다. 살이 찐 사람들은 “게으르고 어리석고 가치가 없다”는 편견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런 편견은 취업 등에서의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종차별’보다 ‘비만차별’이 더 심각하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이다.
비만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의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치료하듯 살빼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런 가운데 다이어트와 비만퇴치 관련 산업은 거대산업이 됐다. 이들은 비만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열심히 돈을 빼내 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통념을 흔드는 연구결과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비만이 오히려 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다는, 이른바 ‘비만의 역설’을 담고 있는 보고서들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적당한 비만이 마른 체격보다 수명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서부터, 일부 질환자들은 과체중이나 비만일 경우 더 오래 산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체중과 사망률에 대한 97개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 약간 과체중인 사람들의 사망률이 정상체중보다 오히려 6% 낮았다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연구결과들은 현상의 관찰일 뿐 살집이 수명을 연장시켜 준다는 식의 인과관계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비만은 무조건 건강에 해롭다는 일반의 생각을 흔드는 것만은 사실이다.
의학계의 일부 비주류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이런 통념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비만과 건강의 관계가 과대 포장돼 있으며 그 배후에 관련업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자가 콜로라도대 교수인 폴 캄포스이다.
캄포스 교수는 평소 “이윤을 극대화해야 하는 제약과 의료산업의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질병은 그 질병에 시달리게 하면서도 죽지 않게 하고, 효과적으로 치료도 안 되며, 그러면서 의사나 환자가 치료를 위해 달려드는 그런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비만이라고 지적해 왔다. 과체중의 사망률이 오히려 낮다는 발표가 나오자 캄포스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비만에 대한 미국사회의 ‘어리석은 공포’를 다시 한 번 꼬집었다.
세상은 역설로 가득 차 있다. 역설은 지식을 지키는 문지기와 같다는 말이 있다. 역설을 보지 못하고서는 세상 이치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역설은 우리가 사물과 현상을 좀 더 폭넓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만의 역설’을 얘기하는 것은 비만을 무시해도 좋다는 식의 위험하고 도발적인 주장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기준에 대한 강박에 너무 사로잡히다 보면 오히려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음을 일깨워 주고 싶어서일 뿐이다.
신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날씬해지겠다며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좋은 다짐이다. 그러나 건강의 척도는 ‘체격’이나 ‘체중’이 아니라 ‘체력’이라는 중요한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체력에 별 문제가 없다면 자신의 몸매에 조금은 너그러운 시선을 던질 줄도 알아야 한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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