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돈이 돈을 벌어주는 모양이다. 세계 최고 갑부들은 지난해도 어김없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산을 불린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100대 부자들이 2012년 올린 수입은 총 2.410억달러에 달했다. 한 사람이 평균 20억달러 이상을 새로 벌어들인 셈이다.
이들의 수입은 위험을 무릅쓴 어려운 투자 결정 등을 통해 벌어들인 것이겠지만 보통의 근로자들처럼 땀 흘려 노동을 한 대가는 아닐 터이니 대부분이 불로소득일 것이다. 부자들의 불로소득과 낮은 세율은 지난 20여년 사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간의 소득격차를 손쓰기 힘들 정도로 벌려온 주범이었다. 그나마 소득양극화를 억제해 온 누진세가 보수정권들에 의해 점차 사라지면서 불로소득은 고스란히 부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 시한을 넘기며 가까스로 도출된 재정절벽 타협안은 부자 증세를 놓고 극심한 갈등을 겪은 끝에 나온 것이다. 공화당은 부자 증세를, 민주당은 증세대상 소득선을 높이는 양보를 함으로써 겨우 타결이 됐다. 그러나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강경 진보주의자들은 소득선을 높인데 대해 “공화당에 항복했다”며 불만이고 극우주의자들은 증세 자체에 극도의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공화당은 내분과 자중지란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부자 증세를 둘러싼 논쟁은 경제철학에 가까운 이슈이다. 그런 까닭에 논쟁은 대개의 경우 평행선을 달리게 된다. 보수주의자들은 작은 정부와 개인의 재량권을 선호한다. 그러니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걷어 가는 것은 이들의 신념을 건드리는 것이 된다. 그래서 세금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인다. 일부 극우 정치인들은 부자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이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떼어가는 것은 부당하다며 아예 모든 국민에게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플랫 택스’를 주장하기도 한다.
부자 증세는 부자들의 의욕을 떨어뜨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들의 증세 반대 논거다. 부시 정권과 공화당은 이런 이유를 들어 부자 감세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부자 세금을 깎아준 결과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됐지만 나라의 곳간은 텅텅 비고 경제는 오히려 더 엉망이 됐다.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꼭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 때문만이 아니다. 부자 증세 반대론에는 “개인이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것”이라는 시장주의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한 사회 안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사회의 덕을 봤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공공자금으로 건설된 도로를 이용해 물건을 운반했기에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고 공공교육을 통해 양성된 무수한 인재들을 채용했기 때문에 성공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 실과의 일부를 사회로 돌리는 것은 당연한 책무가 된다.
부자들 하면 탐욕을 먼저 연상하게 되지만 이런 책임감을 깨닫고 있는 부자들은 의외로 많다. 그 선봉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다. 버핏은 지난해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부자 증세를 역설하면서 공화당이 자신과 같은 큰 부자들은 마치 희귀동물 보호하듯 너무 보호해 왔다며 “수퍼부자들을 그만 애지중지하라”고 꼬집었다.
버핏과 뜻을 같이 하는 부자들은 아예 ‘재정 강화를 지지하는 애국적 백만장자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증세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 단체 사이트에 들어가면 주먹만한 글자로 쓰인 구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세금을 올려라. 우리는 감당할 수 있다’(Raise Our Taxes. We Can Take It.)
이들이 올린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도 읽을 수 있다. 편지 말미에서 ‘애국적 부자’들은 “우리나라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이제 이런 기초가 더욱 든든해질 수 있도록, 그래서 다른 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부디 우리나라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해주십시오. 우리의 세금을 올려주세요”라고 청원하고 있다.
신년벽두 재정절벽 타협안으로 이런 부자들의 소원은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다. 부자 증세는 ‘애국적 부자’들의 간절한 소원이다. 그리고 돈 없는 수많은 서민들의 소박한 소원은 이런 부자들이나마 좀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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