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을 보았다. 배가 고파 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간 복역하고 나온 ‘장발장’ 이야기는 오래전 부터 만화로 소설, 영화, 뮤지컬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이 원작인 레미제라블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부터 1830년대까지 공화정, 제정, 왕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민중들의 비참한 삶과 이들의 투쟁을 바탕으로 한다. 전과자로서 천대 받던 장발장(휴잭맥)은 저녁식사를 제공해 준 성당에서 은그릇을 훔쳐 달아나다가 경찰에게 붙잡히지만 신부가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 왜 촛대는 가져가지 않았느냐’며 그를 감싸는데서 장발장의 참회는 시작된다.
마들렌으로 이름을 바꾸고 가난한 이들을 도우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는 판틴(앤 해서웨이)의 가여운 딸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돌봐주게 된다. 코제트가 사랑하는 청년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혁명군에 들어가고 살아남은 마리우스는 코제트와 결혼한다. 그 누구보다 ‘위대한 삶’을 산 장발잔의 마지막 모습에 관객들은 뭉클하는 감동을 받게 된다.
이 영화 속에 민중의 혁명이 배경으로 나온다. 1832년 6월 시민, 학생, 노동자 중심으로 모인 혁명군이 새로운 정부를 세우고자 바리케이드를 치고 정부군과 싸우는 와중에 파리 시민 2,000명이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그이후인 1848년, 왕정을 없애고 모든 성년남자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2월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프랑스의 자유와 영광이 있다.
바리케이트 전투에서 소년병까지 장렬하게 전사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서 지난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치른 한국의 국민 48%가 생각났다. 진보와 보수의 양자 맞대결로 치러진 대선에서 이념, 지역, 계층 간 갈등이 치열하다 못해 골이 깊게 파였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국민들은 너도나도 ‘새 대통령께 드리는 말’, ‘새 대통령께 바라는 기대‘를 나타내고 축하잔치를 벌이고 발 빠른 이들은 달려가서 줄서기에 바쁘다.
사회적 분위기가 승자에게만 몰려있다 보니 패자를 위한 한마디를 했다가는 몰매라도 맞을 분위기다. 아무도 패자에 대한 배려도, 격려도 없다. 어떤 거대언론은 왜 패배했는가 조목조목 따지며 아프게 때리기까지 한다. 국민의 48%인 1,469만 2,632명, 그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이들의 좌절과 절망, 패배의식과 상실감, 허탈감, 상처는 어디 가서 치유 받을 것인가.
한 고등학교 동창은 30년을 초등학교 시골 벽지로만 자원해서 일하다가 1년 전 조기은퇴 후 안철수 캠프에서 일하다가 갑작스런 해단식 후 현재 공황상태라고 한다. ‘한국민들은 통일에 관심이 없구나, 지금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고 조금의 위기도 원치 않는구나’ 하는 절망감에 젖어 자포자기한 후배는 요즘 가장 싫어하는 말이 “그래도 세월은 간다”라고 한다.
한국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통계에 의하면 최초로 재외국민 투표권을 실시한 한인들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6만7,319표(42.8%),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8만9,192표(56.7%)를 찍었다고 한다. 미주 한인들도 48%에 들어가는 비율이 더 많다고 볼 수 있겠다.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고 승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가 올바른 것이고 패자는 말 그대로 패잔병이고 쓸모없는 소리라고 결론 내리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다. 51.6%에 속하는 국민들이 48%의 국민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을 일으켜 세우고 감싸 안아야 한다. 패자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몸을 최대한 낮추어서 들어야 한다.
48%도 이제 그만 방관자에서 벗어나 새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들을 잘 지켜나가는 지 두 눈 크게 뜨고 바라보아야 한다.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있어서만은 안 된다. 그래도 패자보다는 승자가 태도를 바꾸고 마음을 여는데 여러모로 유리하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해에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닌 ‘2등도 기억하는 살맛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민병임/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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