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새해가 되었다. 새해라면 누구나 흥분하고 환호한다. 인류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새것을 갈망하고 열망하기 때문이다. 옛 것이 더 좋다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그린’이라는 극단도 있었고 원조 설렁탕에 입맛을 다시는 이들이 어찌 없으랴.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학자들의 목소리가 드높고, 아무리 해도 잊지 못하는 옛 추억에 심취한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원래 새로운 변화를 강조하면 진보파가 되고 옛 것을 꼭 붙들고 있으면 보수파가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에는 보수나 진보나 별 차이가 없다. 선거철만 되면 입후보자들은 새 정치를 하겠다고 아우성이고 신선한 정치를 하겠다는 공약이 수도 없이 남발된다. 어디 보수파라고 옛 정치를 펴겠다던가. 신민당, 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새누리당’ 그런 정당의 이름들이 새 것을 선호하는 표심을 노린 것 아닌가.
미국의 지명 가운데 뉴욕, 뉴잉글랜드, 뉴올리언스 처럼 ‘뉴’(new)자 붙은 것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뉴딜, 새교육, 신문화운동, 새마을운동, 신자유주의, 새물결운동, 뉴프런티어, 신생활운동, 개신교회.... 역사에 자취를 남긴 이런 말들이 모두 새 것에 굶주린 인간의 본능을 절절히 말해주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새문안, 새생명, 새믿음, 새소망, 새언약, 새길, 새빛, 새삶, 새창조 같은 이름들을 보라. ‘옛’자 붙인 교회가 어디 있던가.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된다. 새해를 맞았는데도 새해의 결심을 외면하는 것은 지혜로운 삶이 아니다.
새롭게 된다는 것이 정말 무엇일까. 아니, 천하에 새로운 것이 무엇 하나라도 있기는 할까. 새 사람이 대통령 되었다고 해서 정말 새 정치를 보여줄 수 있을까. 아니면 또 새 얼굴에만 그치게 되지 않을까. 재혼을 ‘새혼’이라고 이름 바꾼다고 자동적으로 새로운 부부생활이 될까.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그리스가 요즈음 경제파탄으로 별 볼 일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도 그 나라는 인류 정신사에 위대한 공헌을 남겼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어록이 그걸 입증한다.
그런 그리스어에는 새롭다는 뜻을 가진 낱말이 두 가지 있다. ‘네오스’와 ‘카이노스’이다. 네오스는 영어의 ‘뉴’와 연관된 말인데 그것은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뜻한다. 반면에 카이노스는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뜻한다.
새 구두나 새 옷은 시간이 지나고 유행이 바뀌면 낡은 것이 되어버리므로 네오스에 속한다. 허지만 술, 마약, 도박, 조폭 등에 중독된 사람이 그걸 단칼에 끊어버리고 책임 있는 사람으로 거듭났다면 그는 카이노스의 사람이 되었다. 인격이 개조되고 삶의 목표가 질적으로 새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졌으면 좋겠다. 우선 시간적으로라도 새롭게 된다면 그것도 뜻이 있다. 처녀총각이 결혼하면 새신랑 새신부라고 부른다. 그런데 신혼여행 끝났다고 헌 신랑과 낡은 신부처럼 행동해서야 되겠는가.
무엇보다 질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질적으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악질’이 ‘선질’로 바뀐다는 뜻이다. 한국말에 악질은 빈번하게 사용되면서도 그 대칭인 선질은 아예 사전에도 없다. ‘양질’을 대체어로 쓰지만 말이다.
새해는 선질이건 양질이건 질적으로 새로운 결단을 하는 모멘텀이 되어야 한다. 정치도 경제도 새판짜기(패러다임 체인지)를 해야 한다. 단체나 가정이나 개인도 삶의 방향과 목표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기초공사를 다시 해서 밑바닥부터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생각의 틀을 참신하게 바꾼 ‘글라스노스트’가 공산정권을 해체하고 자유민주주의로 혁신했던 것을 어찌 잊겠는가.
지금 인류문명은 외형적으로는 무섭게 글로벌화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의 생명을 철저히 보호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글로벌 목표가 실현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따라서 이 목표실현을 위하여 문명의 틀을 통째로 새롭게 바꿔가야 한다.
이런 새틀짜기 운동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신한 인격혁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이기주의적 인생관에서 벗어나 함생정신적 세계관을 구축해야 한다. 생명나누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바로 생명을 서로 죽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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