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료/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해가 가고 달이 가고 산천초목 다 바껴도/ 이내몸이 흙이 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서유석이 부른 ‘가는 세월’이다.
가는 세월은 잡을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세월은 시냇물처럼 흐르고 새들처럼 하늘을 날아간다. 산천초목이 바뀌고 우리 몸이 흙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단다. 우리네 마음이란다. 슬픔과 행복 속에 2012년 임진년 흑룡의 해는 가고 계사년 뱀의 해가 오고 있다. 진정으로 잡을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게 세월인 것 같다.
세월은 곧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다. 그 흐름 속에서 사람은 늙어간다. 시와 공.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중 하나다. 시와 공은 분리되지 않는다. 시간이 있는 곳에 공간이, 공간이 있는 곳에 시간이 있다. 시와 공은 함께 간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재깍 재깍 초침이 움직이는 시계를 연상하고 공간은 떠 있는 하늘을 연상하게 된다.
맞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는 현상 중 하나로 인간의 발명과 인간 인식의 한계 안에 있다. 시와 공은 그 보다 훨씬 높은 차원에 있다. 그것은 바로 우주의 차원이다. 우주의 차원은 우주의 시작과 현재, 영원을 의미한다. 허나, 우주의 시와 공은 우리네 삶에 이어지는 가는 세월 속에도 들어 있고 가는 세월은 우주 안에 들어 있다.
영국의 수학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점이 아닌, 선으로 표현한다. 선으로 이어진 과거, 현재, 미래는 기존 철학자들이 사유했던 점의 연결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선, 즉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는 연결을 의미한다. 그는 선 개념을 통해 시간의 유동성과 변화가 세계의 실재이자 과정임을 지적한다.
화이트헤드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사는 인간의 삶을 하나의 예술로 본다. 삶의 예술에 있어 첫째 되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생존이다. 둘째는 생존하되 만족스럽게 생존하는 것이다. 셋째는 만족스럽게 생존하되 만족의 증가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걸 쉽게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는 것, 잘 사는 것, 더 잘 사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오늘보다는 내일이, 올해 보다는 내년이 더 잘되기를 바란다. 더 잘살아가는 가정, 사회, 나라가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네 바램이다. 이런 소망은 세월이 덧없이 흐르는 허무란 병을 치유해주는 하나의 방편이된다. 같은 세월을 살면서 어떤 사람은 잘 살았다고, 또 어떤 사람은 못 살았다고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평가기준은 시 공의 개념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과 공간은 동전의 양면 같은 속성으로 시공간의 개념 중엔 두 가지가 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다. 희랍철학에서 나온 것으로 크로노스는 단순히 흐르는 시와 공간이다. 서유석이 노래 부른 그저 ‘가는 세월’이다. 카이로스는 정지된 시간, 어떤 사건이 일어난 시와 장소를 가리킨다.
사람이 태어난 시와 장소. 사람이 죽은 시와 장소. 한 사람의 생이 우주에서 삶으로 태어난 시와 공. 한 사람의 생이 우주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시와 공. 영원한 흐름속 안의 때와 장소로 메모리 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크로노스다. 누구에게나 있다. 카이로스는 이런 생과 사의 한 가운데서 새롭게 생성된 역사성의 시와 공을 말한다.
인류의 흐름은 무의미의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다. 반면 카이로스는 세계변화의 역사적 의미가 담긴 시와 공이다. 2012년. 한 해를 어떻게 보냈나. 초침이 가듯 무의미하게 보냈나. 아님, 하루하루 후회 없이 산 의미의 한 해를 보냈나. 먹고, 마시고, 싸고, 자고. 이런 것은 가는 세월 속의 한 단면이자, 슬픔이다. 누구나 다 하는 거다.
2013년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계사(癸巳)년, 검은 뱀의 해다. 성서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란 말이 있다. 가는 세월. 무상하게만 볼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가는 세월 속의 한 해이지만 지혜롭게 맞이하자. 세월이 가도 영원히 늙지 않을 마음 하나만으로 매일매일 의미의 역사를 쓰는 새로운 심정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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