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을 놓고 보수와 진보가 벌인 건곤일척의 대회전에서 진보는 패배했다.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탓인지 패배로 인한 진보 진영의 충격은 더 큰 것 같다. 이들이 멘붕상태에서 헤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보수의 승리로 귀결되면서 승패를 가른 원인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사분란하게 뭉친 보수의 효율적인 프레임 전쟁에서부터 진보의 메시지 실패에 이르기까지 원인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것 하나를 꼽으라면 고령화에 따른 연령별 인구구성비의 급속한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는 2040에서는 이기고도 5060세대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바람에 완패했다. 18대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 중 30대 이하가 차지한 비중은 10년 전에 비해 10.1%나 줄어들었다. 반면 50대 이상은 10.7%가 늘었다. 보수의 박근혜 후보는 60대 이상에서 몰표를 얻고 가장 투표율이 높았던 50대에서도 절대적 우위를 보임으로써 젊은층의 외면을 가볍게 상쇄하며 승리를 거뒀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출산율이 가장 낮다. 반면 평균수명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특단의 출산장려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고령화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에서 철저하게 장·노년층의 외면을 받은 진보로서는 이런 인구전망이 반가울리 없다. 노년층의 비율이 지금처럼 급속히 커지다가는 보수의 득세가 고착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두려움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우려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보수적이 된다는 통념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래서 윈스턴 처칠은 “20대 때 진보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40대 때 보수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이런 통념을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성향은 정말 나이에 의해 절대적으로 좌우되는 것일까. 이 문제를 놓고 정치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다양한 연령별 성향 조사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완고해 질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개방적이고 관대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도 정치적 이슈에 대해 노인들이 대체로 보수적인 것은 단순히 나이 탓이 아니라, 그들이 태어나고 살아 온 시대의 경험 때문으로 보인다는 것이 연구진의 풀이다.
미국의 노인들은 대공황과 전쟁을 겪었다. 이런 경험들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성향에 영향을 미쳤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동일한 역사적, 사회적 경험 때문에 비슷한 성향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동년배 효과’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코호트 효과’(cohort effect)다.
이번 대선에서 민심의 향방을 결정적으로 좌우한 것은 바로 ‘코호트 효과’였다. 노년층은 혹독한 전쟁을 겪은 세대다. 이들에게는 북한에 대한 증오가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고 있다. 50대 역시 남북 간에 불신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성장했다.
투표 후 실시된 심층조사에서 많은 50대 유권자들은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NLL 논란에 대해 “뭔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느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다 보수가 ‘종북’으로 규정해 온 이정희 후보의 토론회 논란까지 더해져 이들의 표심은 보수로 확 쏠렸다. 이처럼 북한변수는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대단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보수는 필요할 때마다 이것을 꺼내들어 톡톡히 재미를 봤으며 이번에도 그랬다.
진보의 아젠다 가운데는 괜찮은 것들이 꽤 많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구슬들이라도 이를 꿰어줄 도구가 없다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정치는 이상 실현의 도구가 되어줄 권력을 추구하는 행위이며 국민들은 표로서 위임자를 결정한다.
결국 진보의 미래는 북한변수를 얼마나 현명하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점차 다수가 되고 있는 고령층 유권자들을 자극하지 않을 유연하고 편안한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이 과제이다. 이들의 과거 기억을 지워주지 못하는 한 이것은 진보가 안고 가야 할 숙명이다. 통념에 사로잡힌 채, 나이 든 유권자들을 ‘꽉 막힌 보수’라고 지레 재단하는 자세로는 이번 선거에서 뼈아팠던 ‘부족한 2%’의 극복은 요원해진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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