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신하들이 공자의 가르침을 들먹이며 정치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식의 충고를 늘어놓자 자존심이 상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방은 선비출신 신하들을 향해 “나는 말을 타고 이 나라를 정복했노라”하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신하가 말하기를 “말 위에서 세상을 정복할 수 있지만 말 위에서 세상을 다스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크게 깨우친 유방은 신하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다르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과 정치를 잘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금 가장 고민하는 것도 이런 문제일 것이다.
당선인은 선거기간 내내 너무도 많은 공약들을 쏟아냈다. 국민행복시대를 내세워 출산과 보육에서부터 노후대비까지 모든 세대의 고민을 절반으로 줄여주겠다고 약속했다. ‘반값세일’의 종목은 무려 201개로 총 131조원이 소요된다. 나라 안팎의 경제여건이 너무도 어려운데 이런 천문학적인 돈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아무리 부자나라라도 반값세일을 몇 년이나 계속하며 버틸 나라는 없다. 복지국가는 증세와 국민의 희생 없이 불가능한 얘기다. 그렇지만 신뢰와 약속을 중시하는 당선인으로서는 말 바꾸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취임식 샴페인을 터트리기도 전에 난관에 부딪친 것이다.
문득 박정희 대통령시절이 떠오른다. 70년대 초 시멘트가 과잉생산으로 남아돌았다. 업계의 호소를 들은 박 대통령은 남은 시멘트를 정부가 인수, 농촌에 나눠주라고 지시했다. 1년 후 과잉 시멘트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논의하는 회의가 열렸다. 어떤 마을은 모든 주민에게 분배하는 것으로 끝냈다. 어떤 마을은 다리를 놓고 우물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보고를 들은 박 대통령은 딱 한마디만 했다. “앞으로 잘하는 마을만 지원하라. 못하는 마을은 자조심(自助心)이 생길 때까지 지원하지 말라.” 이 말은 새마을운동의 가이드라인이 됐다. 잘하는 마을만 지원하자 못하는 마을은 더욱 분발했다. 전국 3만 이상의 마을이 경쟁에 들어간 것이다.
또 하나의 실례를 든다. 박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에 한국에 일자리는 없었다. 공장이라고는 제당·제분·제약 회사 정도였다. 이런 시절에 박 대통령은 미국박사 출신이나 엘리트 행정각료들도 착안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냈다. 기능공을 대량으로 길러내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기능공의 후견인이 됐고, 기능공들은 국제기능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착안은 그가 평소에 지녔던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의식은 매사를 통찰하면서 항상 의문을 품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과연 저렇게 될까?” “저 방법 밖에 없을까?” 지도자의 문제의식은 역사를 바꾼다.
박 대통령 이후 이런 통찰력을 가진 대통령은 얼마나 되는가. 근년의 대통령들을 보면 소수가 번 돈을 실직자들에게 나눠주고 ‘반값세일’로 국민의 인기를 얻는 데만 급급한 게 아닌가. 박근혜 당선자도 예외가 아니다. 선거기간 내내 “해 주겠다”는 말만 했다. 계속 퍼주면 유럽의 나라들처럼 깡통 차게 마련이다. 퍼주기보다는 국민에게 인내를 요구하고, 수출을 많이 하는 대기업들을 격려하며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드는데 주력할 때가 아닌가. 박 대통령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산업화시대와 민주화시대의 리더십은 달라야 한다. 명령자로서의 강한 리더십보다는 조정자로서의 부드러운 리더십, 원만한 여야관계, 경제성장을 통한 양극화 해소가 보다 강조된다. 하지만 어떤 리더십이든 여론의 눈치를 보는 리더십은 실패한다. 인기가 좀 없더라도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시키는 게 진정한 지도자다.
국민들도 차기정부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다. 대통령은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다. 케네디가 말했듯이 조국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국민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박근혜 리더십은 국민에게 그런 동기를 불어넣는 데서 시작된다.
훌륭한 국민이 훌륭한 대통령을 탄생시킨다. ‘반값세상’을 바라는 국민이 적어질수록 국민행복시대가 빨리 열린다. 박근혜 정부의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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