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연다. 순간 안도감이 몰려온다. 결국은 막아냈구나 하는…. 동시에 뭔가 상실감 같은 허전함이 찾아든다. 2012년 12월19일 새벽, 그러니까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 당선이 확실시 된다는 보도에 접한 순간의 소회(所懷)다.
“광화문에는 환희에 젖어 ‘박근혜’를 연호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넘쳐난다. 같은 시간 홍대 앞에는 눈물을 흘리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그날의 서울거리를 스케치한 이코노미스트지의 기사다.
하여튼 여러 가지 기록을 세운 대통령선거다. 투표율이 그토록 높았다는 것이 우선 그렇다. 그리고 당선자인 박근혜에게 몰린 표도 표지만 낙선자인 문재인에게 1469만2632표나 몰렸다는 사실도 그렇다.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의 득표(1149만 표)보다 320만이 많았다. 이 정도의 표가 몰렸는데도 낙선을 하다니. 1400만이 넘는 유권자들이 ‘멘붕’에 빠졌다는 보도는 결코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놀라운 기록은 50대 유권자의 투표율이다. 거의 90%가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투표장에 나왔다. 그리고 박근혜에 몰표를 주었다.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박정희와 노무현의 프레임에 갇힌 선거전이다.” 그동안 한국 국내에서의 지적이었다. 그 한국 대선을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렇게 평가했다. “박빙의 접전으로 전개된 대선 레이스는 한국이 미래뿐이 아니라 과거를 놓고도 갈라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틀에서 보면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세력은 국민의 절반에 가깝다. 그 세력이 점점 커져 정권교체 위협세력이 됐다. 그 세력의 정권탈취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가 된 것이 보수성향의 50대의 표심이다.
2012년 대선결과는 그러므로 달리 말하면 박근혜 승리라기보다도 50/60세대가 중심이 돼 좌파의 정권 점거를 막아낸 선거라는 진단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변하는 연령별 인구동향에 따라 언제든지 역전도 가능하다는 전망과 함께.
관련해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이 같은 결과를 가져온 이번 대선에서 구현된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경제건설, 근대화가 시대정신이다. 60~70년대의 상황이다. 그 시절은 박정희 시대였다. 80~90년대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그 주역은 아무래도 YS와 DJ였다. 산업화와 민주화 달성과 함께 그들은 하나 둘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2013년을 바라보는 현재의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그러면. “자유화와 지구화 개념 이 될 것 같다.” 한 국내 정치학자의 주장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과한 한국은 차기 정부에서 자기존중(self-respect)과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이 확대되는 더 많은 자유화와 지구화를 달성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되어야 한다는 게 이번 대선결과는 말해주고 있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거친 현재 대한민국에 주어진 지상과제는 북한주민을 압제와 굶주림의 고통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지적이다. 북한의 김씨 일가체제는 3대로 접어들면서 말기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것이 인권정책이라는 것이다.
북한정책뿐이 아니다. 일본은 날로 우경화 되고 있다. 그 가운데 중화내셔널리즘의 흉흉한 파도가 넘실댄다. 이 정황에서 한국에 요구되는 것은 확고한 안보관이고 또 보편타당성에 입각한 인권외교다.
18대 대선에 유례없이 세차게 몰아닥친 50/60대 노풍(老風)은 이 같은 바람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1400만, 대한민국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여전히 대선결과에 몹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국내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왜. 한 진보논객의 주장을 인용하면 이렇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낙인은, 그 딸이 아버지의 유산과 아프게 단절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부당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와 단절하지 않고 그 후광을 등에 업었다. 그런 딸이 합법적 대통령이 되었다. 그 결과에 잘 동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유신독재의 혹독함을 직접 겪은 적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많은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 대해 지니고 있는 당혹감이다. 그 당혹감은 종북(從北)이라는 바이러스성 유행병과 맞물려 확산돼왔다. 때문에 대선패배의 쇼크는 더 큰 것이 아닐까.
그 치유책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진정성이 깃든, 상처를 싸매는 화해의 인권정책이 그 치유책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아버지를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어야 한다.
인권 대통령으로 다시 태어난 박정희의 딸- 과연 그런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