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만나는 분들이 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통한 만남이다. 얼굴을 대면한 적 없는, 이름으로만 아는 독자들도 있고 오래 전 취재를 통해 알게 된 분들도 있다. 그런 인연이 어느덧 10년·20년 이어지니 특별하고 소중하다.
지난 10여년 한번도 카드를 거른 적이 없는 한 주부가 올해도 제일 먼저 카드를 보내왔다. 60대 초반인 그 주부는 LA 다운타운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남편이 병석에 누운 지 16년, 그는 실질적 가장이자 주부로, 간병인으로 살고 있다.
카드에는 성탄절 인사와 더불어 노란색 메모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1997년 간 이식 수술을 받은 그의 남편이 2년 전부터 신장에 이상이 생겨 일주일에 4번씩 투석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환자는 힘에 부쳐 고통스러워하고 그만큼 신경이 예민해져 짜증을 부리는데 그 모두를 꿀꺽꿀꺽 삼키며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내인 그의 몫이다.
아침에 가게에 나가 일하다가 투석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달려가고, 집으로 돌아오면 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 간호하는 것이 그의 일과이다. 혼자 운영하는 가게를 툭하면 비우니 경기도 나쁜 이때 장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재정적 압박감, 누적된 피로, 심리적 스트레스로 그 자신이 환자가 아닌 게 신기할 정도이다. 전화 통화 중 그는 말했다.
“때로는 말도 못하게 힘들지만 견디고 있어요. ‘나 이렇게 잘 견뎠어요’ 하고 자랑하고 싶었어요.”
칭찬 받고 싶은 마음에 어리광 부리듯 그간의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고 했다.
“나 자신을 칭찬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해야 에너지가 생겨서 남편도 돌볼 수 있을 테니까요.”
힘들었던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2012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해였다. 수년째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삶이 벼랑 끝까지 내몰린 케이스가 부지기수이다. 경제가 좀 나아지고 실업률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장기 실업률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수준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기준 6개월 이상 실직자는 미국에서 490만 명에 달한다. 1년 이상 실직자만도 360만 명이나 된다. 그들에게 딸린 가족까지 생각하면 수천만 명이 암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일이 없으면 수입이 없고 수입이 없으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으니 그 형편이 얼마나 절박할 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렌트비가 없어서 온 가족이 자동차 안에서 생활하는 새로운 형태의 홈리스들도 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은 종종 가정불화로 이어져 가정이 깨어지면서 가족 구성원들의 삶의 근간이 뒤흔들리곤 한다.
겉으로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삶들도 속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상실감, 가족이나 자신이 불치의 병에 걸린 절망감, 속 썩이는 사춘기 자녀로 인해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불안감, 취직 못해 기 죽어있는 성인자녀를 바라보는 답답함, 그외 실연 배신 등 마음의 고통으로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암담한 시간들을 견디며 우리 모두 여기까지 왔다.
삶의 질은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결정한다. 똑같이 어려운 처지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뇌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한다는 말이 된다. 자기희생으로 평생을 살았던 나이팅게일과 슈바이처가 둘 다 90세까지, 빈민들의 어머니였던 테레사 수녀가 87세까지 장수했던 것이 그 반증이 된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보람, 삶에 대한 긍정이 열악한 외부조건을 뛰어넘어 평안과 건강으로 이어진다.
힘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앞의 주부는 신앙의 힘으로 긍정에 도달했다.
“남편이 너무 큰 짐으로 느껴지던 어느 날이었어요. ‘힘들어요’ 하며 기도를 하는데 음성이 들리더군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네 남편도 사랑한단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 네게 짐이라면 데려 가마’ 하는 거예요. 그 후 다시는 힘들다는 불평을 하지 않았어요.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2012년 한해를 사느라 우리 모두 수고했다. ‘잘 견뎌냈다’고 ‘수고 했다’고 스스로 칭찬하는 시간을 연말에는 한번쯤 가졌으면 한다.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다독이며 격려하는 재충전의 시간이다. 자기 긍정의 마음은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를 덜어주면서 삶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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