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Sexiest Man Alive)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의 보도였던가. 인민일보는 미국의 ‘오니언’지 보도를 정색하고 인용했다. 그러면서 김정일의 일하는 모습, 노는 모습 등 55장의 사진을 영문 판 온라인에 실었던 것.
‘오니언’은 정치풍자 전문지다. 그런 그 보도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인민일보는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해 ‘가장 섹시한 인물 김정일’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결과 가장 무감각한 매체임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김정은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한 가지 사실,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가장 연소한 지도자란 사실을 빼고 많은 부문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있다.
아버지 김정일이 급사했다. 그게 지난해 12월17일의 일이다. 이후 후계자로서 지난 1년간 그가 보여 온 궤적도 그렇다.
군부대를 방문한다. 그러면서 3대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일종의 냉혹성이다. 뭐랄까. 새로 등극한 마피아 대부가 ‘패밀리 비즈니스’를 지켜내기 위해 일부러 내보이는 단호함이라고 할까.
그런가 하면 일종의 치기(稚氣)도 느껴진다. 평양의 능라인민유원지 등 놀이공원을 10번 이상이나 찾은 것이 그렇다. 수해로 수 백 명이 죽고 수 십 만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런 대형재난의 현장은 외면한 채 놀이공원만 찾은 것이다.
그 동선(動線)이 사뭇 상충된다. 그가 구사하는 수사도 그렇다. “인민이 다시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불순분자를 모두 색출해 짓이기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좌충우돌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청년대장 김정은의 모습. 이와 관련해 국제위기그룹(ICG)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북한권력내부가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진단하면서 김정은은 정책의 최종결정권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28세 밖에 되지 않았다. 그 김정은에게 ‘원수’ 등 온갖 타이틀이 부여됐다. 그 사실은 역으로 김정은이 권력승계자로서의 부적격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제의 권력은 장성택과 김경희, 그리고 당의 원로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장성택은 김정일 시대에 수차례 ‘팽’(烹)을 당한 경험이 있다. 그런 장성택이 김정은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그런 어리석음은 결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ICG의 또 다른 관측이다.
이영호 등 군부실세의 잇단 숙청도 김정은 보다는 장성택 라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 반발이 여간 만만치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장성택 주도로 취해진 최근의 경제개선조치가 좌초한 것도 당과 군 내 기득권층의 반발에서 비롯됐다.
당과 군내 기득권층만이 아니다. 시장 세력이라고 할까. 장마당을 통해 생존을 이어가는 일반주민들의 불만도 분출하고 있다. 북한의 현 상황은 말하자면 겉으로만 평온을 유지하고 있을 뿐 권력상황은 상당히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김정은은 평양에만 틀어박힌 채 지방 현지지도를 중단했다.” “김정은 관저와 전용시설에 100여 대의 장갑차를 배치하는 등 경호 병력을 대폭 증강했다.” 북한발로 전해지는 이 같은 단편적 보도들은 평양의 현 상황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정황에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발사를 예고하고 나섰다. 김정일 사망 1주기(12월17일)를 전후해 장거리 로켓 은하-3호 발사를 한다는 것이다. 0 대 4. 그동안 북한이 보여 준 스코어다. 네 번이나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그 마지막 시도가 지난 4월이었다. 그리고 8개월이 채 안 돼 또 다시 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것이다. 기술적 보완을 하기에 너무 짧은 기간이다.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는 그리고 외교적으로 득(得)보다는 실(失)이 너무 많다. 한국 대선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아니. 뒤늦은 북풍은 여당 지도자에게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왜 그런데 이렇게 서두르나. 아무래도 뭔가 절박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체제안정이 그만큼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임지의 분석이다. 대외문제를 고려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김일성 아이콘을 동원해가면서까지 체제안정을 꾀했다. 그러나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경제개혁조치는 일부 특권층만 더욱 배부르게 했다. 때문에 불안정성은 그만큼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대로 당과 군의 기득권층에서도 불만감이 쌓여가고 있다.
한 마디로 거대한 축포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려 모든 내부불만을 달래 현 김정은 집권세력의 위치를 다지는 효과를 누리겠다는 거다. 그런데 또 한 차례 실패해 ‘0 대 5’의 스코어를 기록할 때에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아무래도 3대 권력 세습을 실패로 이끄는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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