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선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표심의 향배에 쏠리는 관심 또한 뜨거워지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두 대선후보 캠프 관계자들과 지지자들은 매일 쏟아져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들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의한 지금까지의 판세로 보면 박근혜 후보의 우세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박 후보가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승기를 잡았다는 판단 때문인지 박근혜 후보는 부자 몸조심 하는 듯한 태도가 역력하다. 박 후보의 가장 큰 약점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상당히 추상적인 단어들의 나열이 많고 이슈들에 대한 세세한 설명은 별로 없다. 소양의 문제인지, 아니면 준비된 원고에 의존하는 오랜 습관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박 후보 캠프로서는 이런 약점을 노정시키지 않는 것이 큰 과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이슈에 대한 이해는 물론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요구되는 후보 간 맞장토론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안전한 포맷의 요식적인 TV토론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앞서가고 있는데 괜한 위험 부담을 안을 이유가 없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다급한 상황임에도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문재인 후보 캠프와 지지자들로서는 상대의 이런 전략에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국 대선판은 여론조사로 시작해 여론조사로 끝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왜곡돼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전가의 보도’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속에서 정작 유권자들의 올바른 판단을 도와 줄 자질검증 절차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선거 때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여론조사들이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여론조사의 생명은 정확한 표본추출이다. 그런데 최근 집 전화를 없애고 휴대전화만을 사용하는 유권자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표본선정에서부터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대한민국 휴대폰 보급률이 100%이니 휴대폰으로만 여론조사를 한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통신회사들이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번호공개를 꺼려 대부분의 조사는 집전화와 휴대전화를 섞는 방식으로 실시된다. 또 섞는 비율도 조사기관마다 제각각이다. 집전화로 여론조사에 응하는 유권자들은 대체로 보수성향이 강하다. 그러니 조사결과는 섞는 비율에 따라 얼마든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선거 여론조사의 허구성과 관련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되는 것이 지난 2010년 서울시장 선거이다. 당시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시장은 상대인 한명숙 후보를 거의 20%포인트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보나 마나한 선거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오 시장이 “지옥문까지 갔다 왔다”고 했을 정도로 0.6%포인트 차이 초접전이었다.
표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론조사 자체가 지니고 있는 정치성이다. 여론조사는 어떤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던지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 조사기관들이 의뢰인의 의도와 입맛에 맞는 결과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들을 보면 의뢰기관들의 성향에 따라 후보들의 지지율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수언론들의 조사결과는 박 후보 지지율이 절대적으로 높고 진보언론들의 경우에는 문 후보에 호의적인 수치들이 많이 나온다.
백중세이던 판세에서 한 후보가 치고 나가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나면 부동층은 앞선 후보 쪽으로 많이 쏠리는 경향을 보인다. 일단 대세가 형성되면 유권자들이 그쪽으로 몰린다는 ‘밴드왜건 효과’ 때문이다. 뒤처진 후보 지지자들로서는 투표장에 갈 의욕이 꺾이게 된다. 이것을 노린 여론조사들이 적지 않다.
과학적인 여론조사 방식을 고안해 ‘여론조사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리는 조지 갤럽은 “여론조사는 선거결과의 예측이 아닌 단순한 스냅사진”이라고 말했다. 한 시점에서의 판세를 읽는 지표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나마 한국의 여론조사들을 통해 찍히는 스냅사진들은 이런저런 의도가 낀 때문인지 해상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오죽하면 “여론조사가 여론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올까.
선거 결과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대선의 향방은 걸려온 전화에 대한 수동적 응답의 계량적 합계가 아니라, 주인 의식을 갖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유권자들의 능동적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되는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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