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지름신’이 극성을 부리는 시즌이다. ‘지르다’의 명사형인 ‘지름’과 ‘신’의 합성어인 지름신은 충동구매를 부추기는 가상의 힘을 일컫는 네티즌들의 조어지만 이제는 광범위하게 쓰이는 일상의 어휘로 자리를 잡았다.
수많은 미국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샤핑중독은 바로 지름신에 들려 나타나는 증세이다. 그러니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를 기점으로 본격 시작되는 연말 샤핑시즌은 어느 때보다도 지름신의 강림을 경계해야 할 시기이다.
지름신에 꽂혀 있는 사람들, 즉 샤핑중독으로 고통 받고 있는 미국인은 무려 1,3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샤핑중독자들이 물건을 볼 때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보통 사람들보다 강하다. 지갑을 열어 물건을 사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다.
물건을 손에 쥐면서 쾌감을 느낀다. 마치 알콜중독자의 몸속에 술이 들어가면 손 떨림이 멈추고 정신이 돌아오듯 샤핑을 통해 평정을 되찾는다. 그래서 샤핑중독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소매상에서 받는 치료’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쾌감은 본래가 오래 지속되는 잔잔한 감정이 아니다. 쾌감은 급속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공허함이 남는다. 알콜중독자 몸에서 술기운이 빠지면 무기력해지는 것과 같은 증상이다. 계속 짜릿함을 맛보려면 더 강렬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줘야 한다. 그 결과 소매상에서 치료를 받으려다 정신과적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샤핑은 필요하다. 그리고 샤핑에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특히 연말을 맞아 사랑하는 가족들과 평소 신세진 사람들에게 사랑과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선물을 고르는 일은 힘들고 짜증나는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또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연말 샤핑시즌을 활용해 구입한다면 지난 한 해 열심히 달려온 스스로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될 것이다. 좀 더 거시적으로 말한다면 소비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샤핑은 권장돼야 한다. 문제는 그 정도이다.
올 연말 샤핑시즌을 앞두고 실시한 설문결과들을 보니 어려운 경기에도 아랑곳 않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절반가량이 자신의 재정적 능력을 초과해 지출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 없이 능력을 넘어서는 지출을 마음먹기란 힘들다. 그러니 긍정적으로 볼 여지는 있지만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지름신은 대개 이런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정전문가들은 연말 샤핑시즌 지름신의 유혹에 대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팁들을 들려준다. 지출 규모를 미리 정해 놓고 샤핑 리스트를 만드는 것 등은 기본이다. 이와 함께 기억할만한 것은 컨디션이 최상의 상태일 때 샤핑을 하라는 조언이다. 푹 자고 잘 먹고, 기왕이면 운동까지 마쳐 아주 개운한 상태에서 샤핑에 나서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충동구매를 피하고 쓸데없는 구매를 줄이면서 합리적인 샤핑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샤핑은 기분에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이런 저런 유혹들 가운데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세일의 함정’이다. 세일은 대단히 강렬한 유혹이다. 가령 어떤 물건이 평소 가격보다 50% 낮은 가격에 나와 있다면 사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50%를 절약했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 쉽다. 평소 구입하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물건이라면 알뜰 구매가 되겠지만 단지 가격이 대폭 내렸다는 이유로 집어 들면 합리적인 샤핑이 아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소비자들은 안 사면 손해 보는 것 같은 잘못된 감정에 굴복해, 지나놓고 나면 별 쓸모없는 물건들을 집어 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구매가 안겨주는 만족감 역시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만족감이 사라지면 약간은 허무한 자기합리화가 시작된다.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등등. 조금 다른 맥락의 얘기지만 싸게 구입한 물건은 구매자 스스로가 결국 싸구려로 여기게 된다는 사실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명품업체들이 괜히 할인을 거부하면서 높은 가격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우리의 일상적 샤핑행위도 당장의 만족과 미래에 치러야 할 대가 사이에서 내리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가는 줄어든 잔고, 크레딧카드 청구서, 그리고 괜히 샀다는 뒤늦은 후회,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 재정파산과 관계파탄으로 돌아오게 된다.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출 줄 아는 것이 현명한 소비이며 선택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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