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이 일본을 공식 방문했다. 아키히토(明仁) 일본 국왕이 궁중만찬을 베풀었다. 그 자리에 장쩌민은 진한 감청색 인민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일본 측은 몹시 당황했다. 장쩌민의 인민복 착용이 뭔가 강한 항의로 비쳐져서다. 일본의 과거 사죄가 미흡하다는 불쾌감의 표시가 아닐까 해서 일본 정부는 상당히 긴장했던 것이다. 1998년 11월에 있었던 해프닝이다.
중국 공산당 제5세대 지도부의 공식출범과 함께 전 세계의 이목이 베이징으로 쏠렸다. 수많은 중국공산당 간부들의 환호를 받으며 기자회견 장에 들어서고 있는 7명의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모습.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동시에 장식한 그 사진은 G2로서의 중국의 위상을 새삼 상기케 한다.
무대에 도열한 제5세대 지도자들. 멀리서 바라본 그 개개인의 면면은 그러나 잘 식별이 안 된다. 그들뿐이 아니다. 권력의 핵에 접근해 있는 수 백 명 중국공산당중앙위원들의 모습도 그렇다.
하나 같이 검정색 계열에 투 버튼 스타일의 양복차림이다. 넥타이 색깔도 그렇다. 시진핑(習近平)을 비롯해 수 백 명 당 중앙위원들 대부분이 붉은 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그 많은 대표 중에 백발은 보이지 않는다. 젊어 보이기 위해 모두 염색을 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라니.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한때 드레스 코드는 중산복, 다시 말해 인민복차림이었다. 모택동이 즐겨 입었던 그 인민복차림의 당 대회의 모습이 양복차림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 시절부터다.
개혁을 추구했다. 누구보다 당과 정부의 책임과 투명성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후야오방은 인민복을 벗어 던졌다. 양복을 입기 시작한 것. 개혁을 시도한 후야오방은 그러나 일찍 권좌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바로 발생한 것이 천안문 사태다.
후야오방은 숙청됐으나 양복 차림은 중국공산당의 공식 드레스 코드로 정착됐다. 80년대 이후 중국공산당 간부들은 공식행사에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이 드레스 코드의 변화는 무엇을 말해 주나.
검정색이나, 짙은 감청색 계통의 정장에 넥타이 차림은 세계화시대의 남성 드레스 코드다. 다국적 기업시대에 지켜야하는 일종의 불문율이다. 그 국제적 불문율을 중국 공산당 지도부도 따르기로 했다는 의미다. 다른 말로 하면 경제 개방을 하겠다는 시그널이다.
이후 중국은 적극적 경제개방에 나섰고 그 30년 동안 중국은 비약적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이와 동시에 인민복 착용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장쩌민이 일본 국왕과의 만찬에서 인민복 차림을 한 것이 그 한 예로, 인민복 차림은 일종의 역사성, 상징성을 띠게 된 것이다.
양복에 넥타이차림. 얼핏 서구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중국 공산당의 새 드레스 코드에는 그렇지만 한 가지 엄격한 불문율이 존재한다. 차별화된 차림새, 튀는 패션은 안 된다는 거다.
그 불문율을 무시했다. 그러면서 개성적인 옷맵시를 추구했다. 공산당 간부들은 거의 예외 없이 투 버튼 재킷을 입는다. 그러나 스리 버튼 양복을 입었다. 넥타이도 나름 멋을 부렸다. 때문에 그와 함께 서 있는 다른 공산당 지도자들은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는 낙마한 전 충칭시 당서기장 보시라이의 패션 스타일이었다. 그런 그를 두고 이런 말이 따라 다닌다. “아마도 차별화된 패션 스타일이 그의 정치적 몰락의 한 원인이 됐을 것이다.” 중국 지도층의 새 드레스 코드에서 엿보이는 것은 몰개성(沒個性)의 획일적인 엄격한 집단주의다. 다른 말이 아니다. 그 코드를 한사코 준수하는 중국공산당 지도부로부터 과연 정치적 개혁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무리라는 것이다.
짙은 감청색의 인민복을 입었다. 상당히 강렬한 인상이다. 그런 그가 손가락에 담배를 끼고 있다. 옆에는 부인이 앉아 있다. 최근 공개석상에 나타난 북한의 청년대장 김정은의 모습이다.
아무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다. 조금 뒤떨어져 배석한 사람은 60대의 현영철 총참모장이다. 아버지뻘인 총참모장 앞에서 30도 안 된 김정은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극히 방자한 자세로.
무엇을 말해주나. “나이 어린 김정은이 나이 많은 측근 앞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자신의 권력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과시하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다른 의미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혁개방, 정치적 개혁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 개방도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인민복의 드레스 코드’는 무언중에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동시에 무엇인가 절망의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대의 젊은 나이다. 스위스 유학도 했다. 그런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의 패션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리고 그도 모자라 오만한 절대 권력자의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하려 든다. 그 자체가 설득력이 없는 3대 세습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필사적 몸부림으로 보여서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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