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이틀 앞두고 있던 지난 4일 뉴욕타임스는 투표 참여를 방해하려는 일부 공화당원들의 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투표를 할 때 사진부착 아이디가 필요 없는데도 투표장 밖에서 이것을 요구하면서 유권자들을 위협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지역에서는 투·개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낭설을 퍼뜨리는 방식으로 유권자들의 참여를 저지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에 접근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악의적인 정치세력들’을 표로서 심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번 선거에서 얼마나 광범위한 투표방해가 이뤄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뉴욕타임스의 이 같은 지적은 보수세력이 갖고 있는 우려와 전략을 동시에 드러내 주고 있다. 보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특히 젊은 층의 투표 참여이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젊은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가 결정적이었음이 출구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그러니 보수로서는 젊은 층의 정치적 관심이 부담스럽고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의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는 투표시간 연장안이다. 투표시간을 지금보다 조금 늘려 더 많은 유권자들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주장에는 반대할만한 명분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세력들 간의 계산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동안 무관심과 생업 등의 이유로 참정권 행사를 포기했던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할 경우 이들의 표심이 대선결과를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투표시간 연장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들을 대지만 투표시간 연장으로 젊은 층의 투표가 늘어나게 되면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판단이 이들의 속내일 것이다.
젊은 층 표심에 대한 보수의 우려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젊은이들이 투표장으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쏟았다. 한 보수 신문은 ‘젊은 친구, 현실에는 메시아가 없네’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자네가 투표하는 순간 자네 손으로 국회의원이라는 고액 연봉자를 만들어 낼 뿐”이라며 젊은 층의 정치적 냉소주의를 부추겼다. 아무리 투표해 봐야 현실은 달라질 것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보다 한술 더 떠 아예 “투표율이 높은 나라는 후진국”이라는 주장을 편 보수 이론가도 있었다. 그는 “동남아 후진국들이나 투표율이 80%를 넘는다”며 “투표율을 독려하는 것은 나치의 선동과 같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들이 젊은이들의 투표장 가는 길을 막기 위해 동원한 궤변들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뒀는지 총선 투표율은 당초 전망에 미치지 못했고 보수는 승리했다.
투표율이 높은 것은 후진국의 특징이라는 궤변을 일삼는 정신 나간 인사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에 비해 투표율이 크게 높은 노인들은 후진적 계층이란 말인가. 자신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노인들을 이렇게 폄하해도 되는 것인가. 투표장에 열심히 나가는 ‘후진적 노인’들과 투표장을 외면하는 ‘선진적 젊은이’가 반반으로 섞인 사회가 당신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인가.
되도록 투표율을 낮추고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기려는 의도는 보수의 전형적인 전략이다. 1980년대 미국을 관찰한 책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서 저자 앨버트 허시먼은 보수는 결정적 순간에 “관둬라, 소용없다”는 체념의 메시지를 널리 퍼뜨림으로써 기득권을 지킨다고 지적했다.
허시먼은 이와 관련해 몇 가지 명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효과가 없으며, 그 노력들은 어떠한 변화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무용명제’(futility thesis)이다. 정말 놀랄 정도다. 앞서 언급한 신문 칼럼의 제목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투표율이 낮으면 대의민주주의 명분 자체가 훼손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그래서 많은 선진국들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도입하고 있으며 이런 노력들이 성과를 거둬 OECD 국가들의 평균 투표율은 70%를 훌쩍 넘는다. 정치 후진국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투표율이 높아서가 아니라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억제하려는 상식 이하의 논리가 판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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