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선택은 끝났다. 피를 말리는 싸움 끝에 승리를 거머쥔 승자에게는 한동안 달콤한 나날이 되겠지만 패자의 속은 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이 처해 있는 절박한 상황은 달콤함과 분노에 빠져 있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당장 승자와 패자가 합의를 통해 처리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링컨은 지난 1858년 일리노이 주청사 앞에서 “내부가 갈라진 집은 서 있을 수 없다”는 유명한 연설로 노예해방 운동을 시작했다. 그의 연설은 마치 154년 후 현재의 미국을 내다보고 던진 예언적 질책처럼 들린다. 정파와 이념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미국이라는 집은 갈라지고 있으며 갈수록 균열이 심해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링컨의 우려처럼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30년 미국을 지배해 온 가치는 승자독식이었다. 나누고 양보할 줄 모르는 문화가 점점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경제적, 이념적 양극화는 심화됐으며 이제는 치유가 쉽지 않은 수준으로까지 벌어졌다. 권력은 자신의 지지계층 이익을 대변하는 진영의 도구로 전락했으며 정치판은 이전투구로 살풍경해 졌다.
많은 정치학자들이 미국이 가장 안정됐던 시기로 주저 없이 꼽는 때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이다. 이른바 ‘대압착’(Great Compression)의 시대로 불리는 시기다. 당시 미국은 경제적으로 아주 평등했으며 정치적으로는 중도노선이 주류였다. 미국은 강했으며 미국민들은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 정파는 존재했지만 아귀처럼 다투는 일은 별로 없었다. 타협과 대화가 정치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타협의 정치와 번영에 공화당의 이념적 유연성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공화당 대통령과 의원들은 현재의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성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닉슨은 공화당 대통령이었지만 세금을 올렸고 환경규제를 강화했다. 또 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려 했으며 적성국인 중국과 관계를 튼 것도 그였다.
정치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공화당이 진보적이 되어 민주당과 의견차를 좁히면 소득격차가 줄고 초당적인 제휴가 이뤄진다. 그러나 공화당의 우경화 성향이 강해지면 오늘날과 같이 양극화와 소득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다 미국이 지금의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 분명하게 설명이 된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일에 강경하다. 레이건 이후 두드러진 보수 세력의 극우화는 타협과 대화의 정치가 설 자리를 없애버렸다. 정치세력 누구도 현 상황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비켜갈 수 없지만 굳이 책임의 크기와 소재를 따지자면 티파티 같은 극우의 득세를 가장 먼저 꼽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아이오와의 유력지인 디모인 레지스터는 롬니 지지를 선언했다. 그런데 그 지지 사유라는 것이 조금은 서글프고 씁쓸하다. 롬니가 집권하면 어느 정도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겠지만 오바마가 재집권하면 공화당의 강경한 태도로 볼 때 타협이 불가능해 보인 다는 것이 이유였다. 공화당이 드러내온 당파성에 대한 우려가 읽힌다.
‘대압축의 시대’가 저물면서 미국의 정치는 점차 왜소해져 왔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정파를 위한 정치’로 변질됐으며 ‘큰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작은 정치’가 들어섰다. 반대를 위한 반대와 진영의 논리가 판치고 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작은 정치에 계속 갇혀 있는 한 강한 미국은 그저 구두선일 뿐이다.
승자는 거들먹거리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또 패자는 대범해야 한다.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지 않으면서 꼬투리 잡기에만 매달린다면 그런 정치세력에게 미래는 없다. 그동안 당파적 정치세력들은 미국의 실패를 은근히 바라면서 상대방 발목잡기를 계속해 왔다. 국민들의 고통은 안중에 없었다. 미국의 쇠락은 많은 부분 이런 일그러진 정치에 의해 초래됐다.
미국은 하루속히 대압축 시대의 큰 정치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도 요원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라도 첫 걸음을 떼지 않는다면 그 곳은 우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큰 정치의 복원은 다음 대통령과 연방의회에 부여된 역사적 과제임을 승자와 패자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 갈라진 집은 결코 튼튼한 집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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