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기자회견을 갖고 정수장학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전향적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란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박근혜는 “장학회는 강압이 아닌 자진 헌납한 재산과 성금으로 만든 것”이고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 하면서 장학회에 대한 논란은 자신에 대한 정치공세이자 흑색선전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조차 “그런 회견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향후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여야 간의 소모적인 논란과 갈등은 더욱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는 지난번 인혁당 사건 “두 개의 판결” 발언에 이어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서도 예의 천박한 역사인식과 함께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매함을 또다시 드러냈다.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설립자 김지태씨 유족이 제기한 장학회 반환 소송과 관련해 법원은 강압성은 인정하면서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는데도 박근혜는 “법원에서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했다.
박근혜는 또 “당시 김씨가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았고 5.16 이후 처벌을 면하기 위해 먼저 재산헌납의 뜻을 밝혔다”고 말해 마치 그가 재산을 흔쾌히 자진 헌납한 것처럼 진실을 호도했다. 김씨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손목에 수갑을 찬 채 재산권 포기 각서에 서명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박근혜가 강압이 아닌 자진 헌납이라고 주장하는 그 뻔뻔함이 참으로 가증스럽다.
김씨가 처벌을 받은 것은 부정부패 혐의 때문이 아니라 5.16 쿠데타 거사 자금 조달을 거부해 보복을 당한 것이다. 당시 김씨는 삼화그룹 회장으로 부일장학회를 설립해 가난한 학생들의 학업을 도왔고 부산일보와 방송사 사주로서 자유당 정권에 맞서 싸운 인물로 부산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존경받는 기업인이자 언론인이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사건을 제일 먼저 보도한 것도 다름 아닌 부산일보였다.
김씨에 대한 박근혜의 주장이 설사 사실이라 해도 특정인의 재산을 강탈해 장학회를 만들어 사유화할 권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분명한 것은 이유가 뭐였든 박근혜의 아버지는 김씨의 재산을 빼앗은 가해자이고 김씨는 피해자란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박근혜는 피해자인 김씨를 부정축재자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딸로서 김씨 유족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기고 울화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예를 조금이라도 지켜주는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를 갖췄어야 한다.
박근혜는 “아버지 시대에 상처받고 피해를 입은 분들과 가족에게 사과하고 그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정수장학회 앞에서 강탈해간 재산을 돌려달라며 오열하는 김씨 유족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이렇듯 말과 행동이 따로국밥이니 국민들이 그녀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지난 9월24일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한 박근혜는 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여론에 떠밀려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한 것이 얼마나 억울하고 가슴이 아팠으면 그랬을까. 박근혜의 측근인 김재원 의원은 “박근혜가 정치를 하는 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으로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박근혜는 정치적 자살골을 넣은 것과 다름없다.
언젠가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이 ‘대통령이 돼선 안 될 후보 1위’로 박근혜를 꼽은 것은 실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나마 대한민국에 국운이 있다면, 한때 박근혜의 충직한 대변인이었던 전여옥 전 의원이 말했듯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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