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부지런하고 체력 또한 타고난 것 같다. 그녀는 대선 후보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일정을 소화하면서 무차별적이라 할 정도로 온갖 계층의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나고 있다. 소위 ‘국민대통합 행보’를 계속하면서 지지층 외연 넓히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정말 무쇠체력이다. ‘선거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박근혜는 기회가 될 때마다 ‘100%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입에 올린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100% 대한민국을 만들어 모든 국민이 함께 가는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고 외쳐댄다. 박 후보는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 읽은 수락연설문에서 “그동안 우리 국민은 하나의 목표를 보고 달려왔다. 국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해 왔다”며 자신은 국민 모두가 하나 되는 100%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의 연설은 “저의 삶은 대한민국이었다”는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스스로의 삶을 대한민국과 동일시하는 의식은 숭고하고 아름답다기보다 불편하게 다가온다. 어떤가. 국민 전체를 국가라는 깃발과 상징 아래 일렬로 세울 수 있다는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지 않는가.
박근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정치인이면서도 정작 정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국민통합을 목표로 하는 행위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 내의 다양한, 그래서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다.
갈등이 존재하지만 극단적인 충돌로 인한 사회적 에너지의 낭비 없이 조정과 합의가 이뤄지도록 유도해 내는 것이 훌륭한 정치이다. 이런 정치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완충역할을 해 주는 가운데 계층이다.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이고 이념적으로는 중도층이다.
가운데 계층이 두꺼울수록 갈등은 최소화 되고 사회는 안정된다. 국민들 모두를 만족시켜 주고 하나로 묶는 정치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100% 통합 운운하니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아무리 ‘아니면 말고’ ‘안 돼도 그만’식의 약속이 난무하는 선거판이라지만 이런 구호와 공약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정말로 이런 정치가 가능하다고 믿고 말했다면 무지하거나 순진한 것이고 비현실성을 자각하고도 입에 반복적으로 올리는 것이라면 이것은 기만이다.
만약 통합과 화합을 정말 고민하고 있다면 비현실적인 구호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또 이념적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대한민국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한 알의 씨앗과 밑거름이 되겠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겸손한 약속을 내걸어야 했다. 통합은 깨어진 도자기 파편들을 접착제로 붙이듯 물리적으로 뚝딱 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설득과 양보를 통해 아주 조금씩 이뤄나갈 수 있는 지난하면서도 인내를 요하는 장기적 과정이다.
그리고 통합은 무엇보다 자신의 지지기반까지 버리는 희생을 보이지 않는 한 공허한 수사일 뿐이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른 계층과 세력을 융합하려면 우선 자신의 지지계층에서 탈피해 상대의 입장에 설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생각을 수용하고 역지사지 하는 데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토끼의 일부를 놓아버릴 각오까지 해야 한다.
그런데 선거전에서 보이는 박근혜의 행태를 보면 이런 대승적인 차원과는 거리가 있다. 국민통합 행보를 내세우다가도 선거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구태의연한 색깔론에 기대 자신의 집토끼인 극우결집에 나선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는 것이 싸움이라지만 이렇게 이겨서 어떻게 100% 통합을 이뤄내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요즘 ‘MB의 추억’이라는 독립영화가 개봉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747’(연 7% 성장에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이라는 허황된 공약에 속아 MB를 선택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생생히 깨닫게 해주는 이 영화는 ‘코믹 호러’로 분류돼 있다. 내용은 웃기는데 메시지는 섬뜩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100% 대한민국’이란 구호 역시 ‘코믹 호러’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우습고 그것에 깃들어 있는 인식은 무섭다. 이 구호는 그녀의 아버지가 국민들의 충성세뇌를 위해 만들었던 국민교육헌장의 부제로나 어울릴 법 하다.
통합 자체가 구호와 목표가 되는 국가는 위험하다. 사회 구성원들이 하나하나 존중되고 다양성이 보장되다 보면 저절로 이뤄지는 좋은 정치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박근혜의 ‘100% 대한민국’은 선거구호로는 그럴듯할지 몰라도 현실정치는 물론 시대정신과도 한참 어긋나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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