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다가오면서 오바마의 증세계획에 심기가 상한 일부 수퍼부자들의 ‘오바마 때리기’가 거세지고 있다. 오바마는 재선되면 감세정책을 끝내고 연 25만달러 이상 고소득층에 대해 최고소득세율과 자본소득세율을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그러자 포브스지 순위 400위 안에 들어 있는 상당수 부자들이 트위터와 언론 기고, 그리고 공개석상 등을 통해 오바마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퍼붓고 있다. 헤지펀드로 거부가 된 리온 쿠퍼맨은 오바마를 히틀러에 비유하기까지 한다. 그는 ‘반 오바마 운동의 교황’이라는 별명까지 붙어 있는 인물이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 그러니 부자들이 정치적 입장이나 소신을 드러낸다고 해서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또 이들이 거액을 특정후보의 당선을 위해 쾌척하는 행위도 모두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부자들도 얼마든지 오바마를 싫어하고 공격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금력을 휘둘러 자신보다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는 이들의 표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려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것이 실정법상 위반은 아닐지 몰라도 도덕적으로는 옳지 못하다. 그런데도 이런 행위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오바마 공격에 나서고 있는 개념 없는 1%들이 적지 않다.
플로리다의 대형 타임셰어 리조트인 웨스트게이트의 소유주이자 최고경영자인 데이빗 시걸은 최근 5,000명의 종업원들에게 “오마가가 당선돼 세금이 오르게 되면 당신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협박성 이메일을 보냈다. 시걸은 “오바마가 나 같은 부자들에게 ‘1%’라는 딱지를 붙여 우리가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하는 계급사회에 살고 있는 것처럼 믿게 하고 있다”며 여차하면 자신의 비즈니스를 접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메일을 받은 종업원들이 받았을 압박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4만5,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카치 인더스트리사 최고경영자도 이달 초 전 종업원과 하청업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번 선거에서 오바마와 민주당을 찍을 경우 그 결과를 당신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노골적인 위협을 가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대선을 앞두고 돈이 정치권력으로 행세하고 있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업주와 종업원은 갑과 을의 관계이다. 법이 고용관련 횡포와 부당해고를 막아주고 있다지만 이들 관계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여전히 주인이다. 고용주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종업원들의 영원한 숙명이다. 그런 관계에서 고용주가 생계수단을 들먹이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강요할 때 동요하지 않기란 힘들다.
지난 해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서울시 주민투표가 실시됐을 때 한 유명 보일러 회사 회장이 직원들에게 투표 지침을 내려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이 ‘회장님’은 직원들에게 “어린 자식들이 학교에서 공짜 점심을 얻어먹게 하는 건 노숙자 근성을 심어주는 것”이라며 “반드시 투표장에 나가 빨갱이들의 행패를 표로써 완전 제압해야 할 것”이라는 원색적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종업원을 하인이나 마름쯤으로 여기는 천박한 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부 부자들의 상식을 벗어난 이런 행태는 그들이 갖고 있는 자격의식과 특권의식에서 비롯된다. 부자가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함정에 빠지게 되기 쉽다.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교통위반 상황을 관찰했더니 최고급 차량들의 끼어들기와 행인 앞지르기 등 위반이 그렇지 않은 차량들에 비해 무려 4배나 많았다는 올 봄 버클리 대학 발표는 경제적 지위가 특권의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일상생활 속 사례로 보여준다.
어느 사회나 품격 있는 부자와 천박한 부자는 뒤섞여 있다. 문제는 천박한 부자들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만 해도 대부분 미국의 부자들은 지금처럼 거만하거나 탐욕스럽지 않았다. 종업원들의 사기를 꺾는다는 이유로 연봉인상을 줄기차게 거부한 CEO도 있었다. 그러나 부를 축적하는 방식과 사회규범이 크게 달라지면서 이런 스토리는 이제 벽장 속 낡은 물건이 돼 버렸다.
종업원들의 정치적 의견조차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여기며 일자리를 무기로 협박에 가까운 언사를 내뱉는 것은 마치 아이에게 장난감을 던져 주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빼앗아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못난 어른 수준의 멘탈리티와 같다. 이런 품격 없는 부자들을 보노라면 성경의 가르침마따나 돈 많은 부자가 영혼까지 풍요롭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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