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로 발표된 9월 미국의 실업률 통계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대선을 불과 한 달도 남기지 않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실업률은 양측이 모두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뉴스이다. 실업률이 4년 만에 8% 밑으로 떨어졌다는 뉴스는 오바마 진영에 호재이지만 1차 대선토론으로 반전의 계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공화당으로서는 당혹스런 수치일 것이다. 실업률이 전달에 비해 극적일 만큼 하락한 것은 아니지만 7과 8이 주는 어감의 차이는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이 뉴스가 모처럼 달아오르고 있는 선거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여긴 것일까, 실업률에 대해 쏟아내는 보수진영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일부 인사들의 분노는 이성을 의심케 할 정도로 비합리적인 논리로 표출되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그 수단은 보수의 주무기인 ‘음모론’이다.
실업률 음모론을 가장 먼저 제기한 사람은 공화당 지지자이면서 오바마를 극도로 증오해 온 잭 웰치 전 GE 회장이다. 웰치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경영방식으로 GE를 급성장시켜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영의 귀재로 추앙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경영방식은 이제 낡은 시대의 유물로 취급받고 있다.
그는 실업률이 오바마 재선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을 트위터에 올렸다. 퇴물 경영인이지만 과거의 명성 덕에 많은 트윗 팔로워들을 거느린 웰치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은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논란이 일고 공화당 내부로부터도 비판이 제기되자 웰치는 곧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현역시절 경영실적을 마사지 잘하기로 유명했던 웰치다운 발상이라는 조롱은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웰치보다 한 발 더 나간 음모론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오바마를 위해 자신들의 실업 상태를 숨긴 결과 실업률이 낮아졌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경제적 처지를 숨겨서라도 돕겠다는 충성스런 지지자들을 가진 민주당은 복 받은 정당임에 틀림없다.
일부 극우 인사들이 제기하는 이 같은 음모론을 접할 때면 이들의 뇌 상태가 보통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인간의 정치적 이념은 일정부분 뇌의 구조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최근 뇌신경과학 발달에 의해 점차 밝혀지고 있다.
우리 뇌의 부위 가운데 진화적으로 오래된 부분인 편도체는 공포를 일으키는 위협과 자극에 반응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편도체보다 나중에 발달한 전대상피질(ACC)은 실수나 오류를 감지했을 때 교정반응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뇌를 MRI로 찍어 보면 보수주의자들은 편도체가 큰 반면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전대상피질의 회백질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뇌신경과학의 최근 발견을 적용해 본다면 실업률 음모론에 사로잡혀 있는 인사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큰 편도체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물론 실업률 통계는 경제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이것이 통계가 지닌 한계이다. 그러나 실업률이 10%를 훌쩍 넘었을 때는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같은 방식으로 집계한 수치가 크게 떨어지자 조작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보수 음모론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보수의 가장 보편적인 특징은 신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는 객관적 사실은 일단 거부하고 본다. 대선 정국에서 보수가 드러내 온 신념은 간단하다. 경제를 망쳐 온 오바마 같은 진보주의자(혹은 사회주의자)에게 절대로 권력을 쥐어줘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다.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발표된 실업률은 보수의 이런 신념에 위협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럴 때 동원되는 기제가 바로 음모론이다. 낮아진 실업률을 조작으로 설명하면서 신념과 사실 사이에서 발생한 인지적 부조화를 해소하는 것이다.
신념을 지키는 것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일지는 몰라도 편견과 증오로 가득 찬 신념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사회와 국가에 해악이 된다. 이른 바 ‘사회지도층’ 인사라면 더욱 그렇다. 잘못된 신념의 감옥에 갇혀 왜곡과 궤변을 서슴지 않는 전직 스타 CEO의 노추를 보면서 현재 미국이 처한 곤경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됐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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