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시가 불법체류자들에게 임시 신분증을 발급해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방안은 불체자들을 주민으로 인정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이들이 좀 더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실질적인 취지도 지니고 있다. 불체자들은 신분증이 없는 관계로 은행구좌를 개설하지 못해 금융거래를 할 때 추가적인 부담을 안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불법적으로 미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부담은 감당해야 할 죗값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곳에서 시민으로 살고 있거나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음에도 이런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백만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들 쉽게 말한다. 그렇지만 가난은 당사자들에게 깊은 정서적 상처와 모멸감을 안겨주는 고통스러운 굴레이다. 그것도 모자라 가난은 마치 자가면역 질환처럼 아무 것도 없는 그들의 경제적 처지를 더욱 나락으로 빠뜨리는 원인이 된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데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미국사회의 구조이다. 특히 도시에 거주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많은 한인들도 실감하는 일이겠지만 도심지역 가난한 지역에 사는 운전자들은 같은 운전기록, 같은 차종을 가진 중산층 지역 운전자들보다 훨씬 높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연간 수백달러 정도는 보통이다.
몇 년 전 브루킹스 연구소는 12개 도시의 가난한 미국인들이 떠안고 있는 부당한 경제적 부담의 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자동차를 구입할 때 연소득 3만달러 이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평균 2%포인트 정도 더 높은 이자율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주택모기지 이자율에서도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가난한 동네에는 번듯한 대형업소들이 들어서길 꺼려해 주민들은 군소업소에서 더 많은 가격을 치르고 물건을 산다든가, 은행들이 없거나 구좌를 개설할 형편이 안 돼 임금으로 받은 수표를 환전하면서 적지 않은 수수료를 떼이고 있다는 것도 브루킹스 연구소 조사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런 사례들을 들자면 끝도 없다.
나는 지난 해 플로리다의 빈곤실태를 다룬 CBS의 시사매거진 ‘60분’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방송에 소개된 가족들은 가장 실직 후 자동차에서 잠을 자거나 모텔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하룻밤에 최소 20~30달러는 할 모텔에서 자느니 차라리 허름한 아파트라도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들은 아파트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첫 달 렌트비와 시큐리티 디파짓으로 쓸 목돈이 없었던 것이다. 너무 가난한 까닭에 이들은 오히려 주거에 필요 이상의 돈을 써야 하는 불합리한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떠안게 되는 비용을 흔히들 ‘게토 택스’(ghetto tax)라고 부른다. 정부에서 부과하는 공식세금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마치 세금을 내듯 가난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가난한 사람들이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1%만 내려줘도 연간 65억달러의 돈이 이들의 손에 쥐어질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많은 주 정부와 지방 정부들이 이를 시정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떤 주는 저소득층 지역 은행에 거액의 주 정부 돈을 시중금리 이하로 예치해 가난한 주민들에게 저리로 돈을 빌려주도록 유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노리는 약탈적 대출을 단속하기도 한다. 집과 보험 등을 팔 때 크레딧 점수 사용을 규제하고 있는 주도 있다.
이런 조치들이 도움은 되겠지만 효과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이다. ‘게토 택스’는 일부 정부들과 온정적인 개인투자가들의 개입과 노력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열심히 일을 하면 기본적인 삶의 수준은 영위할 수 있도록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는 것이 시급하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에 근접하도록 높이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런 까닭에 연방 정부와 의회의 결단 없이 가난의 악순환을 끊어낼 방도는 없다.
미국에서 가난하게 사는 데는 많은 돈이 든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런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일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같은 역설이야말로 미국의 맨얼굴이다. 그러니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그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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