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에 접어들면 너도나도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열어 출마 후보자와 지지자들로 붐빈다. 출판사가 수익이 생긴다고 생각한 원고를 제외하곤 대부분 자비 출판이다. 자비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영어로는 Vanity Press(허영심 출판)라고 한다.
매릴랜드에 소재한 ILP(International Library of Poetry)라는 회사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시(詩) 콘테스트를 연다고 미 전역의 고등학교에 광고를 했다. 그러나 응모 작품수가 많고 장시(長詩)가 많아 책으로 출판해서 학생들에게 팔아도 수입이 좋지 못했다. 지면이 많아 인쇄 분량이 예상을 훨씬 상회했기 때문이었다. 응모한 학생들 전원에게는 시가 준 결선에 진출했다며 책에 수록할 테니 책값과 송료를 보내라고 했었다. 즉, Vanity Press 사업을 한 것이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사진 콘테스트였다. 응모한 사진들을 일률적인 조그만 크기로 출판하면 지면을 최소화하면서 수입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비 출판을 통해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프로 작가보다는 순수 아마추어들을 상대로 대량의 응모작을 모아야 했다. 그들은 또 다른 ILP(International Library of Photography)라는 회사를 차려 미국 내의 일요신문 삽입 광고에 사진 콘테스트를 연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했으며, 응모 규정에 사진으로 수입을 내는 프로 작가는 응모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프로 작가가 아마추어 행사에 참여한다면 자신을 스스로 격하시키는 일이 된다. 게다가 말만 인터내셔널이지 미국 국내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돈벌이 행사였다.
광고를 본 많은 아마추어들이 응모를 했다. ILP는 출품작이 준결선에 올라 책에 수록하겠으니 책값과 송료를 보내라는 편지를 모든 응모자들에게 보냈다. 이번에는 한수 더 떠서, 이런 사진들로 한권, 저런 사진들과 조합해서 다른 한권을 만들었기 때문에 한 출품작이 이름만 다른 여러 권의 책에 수록되었다.
또한 웹사이트(www.picture.com 과 www.ephotograph.com)를 운영하면서 준결선에 올랐다며 응모작들을 일정 기간 이 홈피에 올렸다가 내리곤 했다. 응모자들은 그 내막은 모른 채 자신의 사진이 책에 수록된다는 소식에 열광했다.
응모자들 중에는 자신의 세 아들 사진을 책에 싣고 싶어 아들 사진 석장을 응모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준결선에 올랐다는 편지를 받았고, 곧 책을 주문했으나 세 아들의 사진이 각각 다른 세권에 수록되어 실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그저 그런 아마추어들의 사진들로 넘쳐나는 책의 주문량이 주최 측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고, 이 회사는 책값을 받은 후 문을 닫아 횡령사건으로 번졌다. 많은 응모자들로부터 비난의 세례와 함께 매릴랜드 주 검찰총장에게 탄원서가 쏟아졌다. 인터넷에는 응모자들의 원성으로 넘쳐난다.
오직 초기에 응모했던 소수의 사람들만 책을 받았고, 폐사로 인해 더 이상 출간되지 않아 이 책들은 보잘 것 없는 귀한 책이 되었다. 어떤 응모자들은 책을 받지 못해 자신의 사진이 정말 출판되었는지 확인하고 싶다며 블로그에 질문을 올리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International Library of Photography’라는 말을 검색해보면, 지금은 없어진 이 회사를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비 출판사라고 말하고 있다. 이 회사의 홈피였던 www.ephotograph.com이라는 도메인은 사라졌고, www.picture.com 이라는 도메인 네임은 매물로 나왔다.
이런 와중에 한국에서 이민온 어느 프로 사진작가가 사정을 모르고 응모해 대상을 타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이래저래 개운치 않은 행사였다.
<폴손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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