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집권당인 새누리당 원내대표라는 인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을 듣노라면 무책임의 극단을 보게 된다. 그는 묻지마 살인과 자살 등 한국을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는 사회적 병리현상의 책임을 전임정권과 야당의 책임으로 돌리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국민을 분열시키고 불안만 키우는 야당의 구태정치가 우리 사회에서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는 분위기를 키우고 이런 것들이 폭력과 살인행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정치인의 인식이야말로 조상 탓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이 특정 정치세력의 손에 권력을 쥐어주는 것은 그것을 휘둘러 잘 먹고 잘 살라는 뜻이 아니다. 권력을 분별력 있게 행사해서 국민들의 안녕과 행복을 높여달라는 당부이다. 그런 막중한 소임을 짊어진 세력이 정권을 잡은 지 4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 여전히 전임정권과 야당타령만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이 정치인의 지역구는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이다. 이런 곳을 기반으로 정치생활을 이어온 인사이니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를 살필 별다른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묻지마 지지를 보내주는 지역구민들의 심기를 보듬어주기에나 알맞을 무책임한 말들을 뱉어내면서도 별다른 고민이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매일 43명이 자살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지난 주말 발표됐다.
OECD 평균보다 2.5배 높은 자살률이라니 가히 ‘자살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이런 병리현상은 현 집권세력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말장난으로 회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현 정권 들어서 한국사회의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이 심화돼 온 것은 수많은 지표들에서 객관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많은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높아져 왔다. 이것이 자살과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진단은 현 한국사회의 지표와 통계들뿐 아니라, 정치세력의 성격과 사회 병리현상 간의 상관관계에 관한 학술적 연구를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는 저명한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이다. 하버드 의대 교수를 지낸 길리건은 미국사회의 폭력문제를 연구해 왔다.
그는 연구를 하는 가운데 지난 100여년 간 미국의 살인, 자살 등 ‘폭력 치사’(그는 살인과 자살을 합쳐 이렇게 부른다)가 특정시기에 급속히 늘었다가 다른 시기에는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것이 늘어나는 시기는 공화당 집권과 겹치고 줄어드는 때는 민주당 집권시기임을 밝혀냈다. 그가 사용한 통계는 FBI가 발표한 것이니 자료의 신뢰성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폭력 치사로 인한 사망률은 민주당 때가 공화당 집권시기보다 인구 10만명당 38.2명이 적었다. 공화당이 권력을 잡고 있던 시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이다. 그는 이런 현상에 대해 “공화당이 추구하는 정책이 국민들을 한층 더 모욕감과 수치심에 노출시키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불평등을 조장하는 정책에 의해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폭력 치사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길리건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집약한 책의 제목을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더 해로운가’(Why some politicians are more dangerous than others)라고 붙였다. 그의 눈에는 정치세력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레드와인처럼 사회적 건강을 높여주는 세력이 있는 반면 흡연처럼 해로운 세력이 있는 것으로 비쳐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폭력 치사뿐 아니라 경제 불황도 집권세력의 성격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가 1900년부터 2010년까지 분석해 보니 미국은 민주당 집권시기보다 공화당 집권시기에 대략 3배 더 많이 불황을 겪었다. 민주당 때는 불황기가 86개월이었고 공화당 때는 246개월이었다. 이 숫자는 불평등의 심화로 건강한 중산층이 위협받을 때 경제의 안정도 흔들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이런 사회 역학조사가 실시된다면 의미 있는 분석이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모습을 봐서는 그 결론이 길리건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싶다.
한국과 미국의 대선을 앞두고 온갖 장밋빛 공약과 구호들이 넘쳐나고 있다. 난무하는 공약과 구호 속에서 누가 정말 국민을 진심으로 위하는 세력인지를 분간하기란 쉽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후보지명 수락연설에서 언급했듯 대선은 단순히 두 후보 간에 누구를 고를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한 논객은 이것을 ‘진짜 양’과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식별하는 것이라고까지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더 위험하고 해로운 정치세력을 걸러내는 일은 잘못할 경우 대가가 혹독하다는 점에서 대단히 신중해야 할 선택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선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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