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으로 살면서 슬픔과 고통을 당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 아무도 없다. 불교에선 인생 자체를 고(苦)라 하며 삶을 고통(苦痛)에다 비교한다. 아이가 태어날 때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도 고(苦)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란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原罪)도 고통과 무관하지 않아 죄와 고통은 하나로 연결된다.
19세기 덴마크의 신학자 킬 케골은 인간의 이런 비극을 관조하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를 어머니 배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 사람으로 비유했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의 저서를 통해 사람이 죽게 되는 경우는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기에 그렇다 한다.
이렇듯 생은 고로 시작하여 고를 향해 치닫다 고로 끝나는 것이라면 너무나 허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교에선 고집멸도(苦集滅道)라 하여, 무상한 것을 향하는 사람의 집착을 고통의 원인으로 보고 집착이 없는 무아의 경지에 들면 고는 멸하고 마침내 공(空)함을 알아 도에 이른다고 한다. 불교 사상 중 하나다.
기독교에도 원죄를 용서받는 구원론이 있다. 창조주가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와 인간의 모든 죄를 구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론이다. 예수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한 후 부활하여 영생을 이루며 그를 믿는 자마다 죄를 용서받고 영생에 들게 된다는 교리다.
고통과 슬픔 그리고 절망에 가까워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그 슬픔과 고통을 가슴에 쓸어안고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고통과 슬픔은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맞이하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그들만이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아픔이다. 바로 11년 전 9.11때,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2001년 9월11일 아침. 뉴욕 퀸즈보로플라자 전철 역 위에서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위용을 자랑하던 무역센터가 불기둥에 쌓인 채 무너져 내릴 때 미국의 아픔과 고통을 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100층이 넘는 빌딩 옥상에서 살기 위해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낙엽 떨어지듯 떨어져 내렸다. 절망 그 자체였다. 쌍둥이 빌딩에서 실종 된 수천 명 안엔 한인들이 있었고 그 중 어떤 청년도 있었다. 그 청년의 아빠와 엄마를 20년 전부터 알고 지낸다. 그 당시 그 부부는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 절망 속에 빠져 들었다. 아침에 출근한 아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그 누구도 어떤 말로도 그 부모를 위로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가고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또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한 고통과 슬픔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지 않는 신앙의 힘으로 꿋꿋이 견디어 고통을 승화시키며 살고 있다. 9.11., 어느 날 그 청년의 엄마는 시 한 편을 지어 발표했다.
“눈부신 맑은 하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보이거나 만질 수 없다 했든가/ 그것들은 오직 마음속에서 느껴질 것이라네/ 눈물로 강물 만들어 배 저어 만날까/ 주님의 이름아래 살아온 너의 시간들/ 많은 이들이 오늘만은 너를 떠올리겠지/ 사랑의 흔적과 향기를/ 너를 따르던 주일학교 학생들 친구들/ 갈 곳을 바르게 찾아가게 하느라 수많은 날들을 그들과 함께 하며 밤잠을 설쳤었지/ 음악으로 그들을 촉촉이 주님의 품으로 다가오게 하며/ TV를 열었네/ 너의 얼굴과 이름이/ 꽁꽁 싸서 이불 밑에 두었던 그리움이/ 어쩌니/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어떻게 보내리 너를/ 의연하게 살리라/ 추억은 현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추억은 현실을 사는데 힘이 된다네/ 슬픔을 퍼다 버리고/ 평화의 물결이 퍼지길/ 축제의 막이 오르길/ 네가 있어 나의 인생이 더 없이 행복했으며 내 가슴은 항상 따뜻하게 덥혀 있었네/ 알지!! 00야/ 힘 낼께/너의 두 손을 만져보며/ 내 품에 꼭 안으며/ 사랑해/ 엄마가.”
승화시킨 고통의 결과가 귀한 시(詩)가 되어 탄생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고통과 슬픔을 당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이겨내는 것 또한 사람임에야. 엄마가 하늘에 있을 아들에게 한 말 “00야 힘 낼께!”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사흘 후면 9.11이다. 9.11 영령들 하늘에서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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