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대접전이다. 그 전투가 결국은 끝난다. 복기(復棋)에 들어간다. 불현 하나의 필연적 수순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삼 확인 되는 것이 있다. ‘시대정신’이란 것이다.
YS, DJ, 노무현, 이명박. 최근의 역대 한국 대선 승리자들이다. 그 승리 하나 하나가 그렇다. 필연의 결과였다. 결국은 누가 그 때 그 때의 시대정신을 대변했는지에 따라 대권의 향방은 결정됐던 것이다.
2012년 대선은 그러면. 아무도 자신 있게 예측을 못한다. 예년의 대선과 양상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경선과정부터가 그렇다. 관심이 없다. 유권자들의 시선은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박근혜를 후보로 옹립했다. ‘대화합’을 외치지만 어딘지 공허하게 들려온다. 새누리당 경선은 흥행에서 실패했다. 현재 진행 중인 민주통합당 경선도 유권자 시선에서 멀어지고 있다. 야당의 표밭 호남권에서조차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대선은 여당과 야당이 싸우는 전통적 맥락의 선거가 아닐 것 같다. 열기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대선분위기. 그에 따른 분석이다. 이 특이한 현상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 ‘안철수 현상’이다.
박근혜 측은 ‘안철수 현상’을 애써 부인한다. 그러나 ‘애써 부인 한다’는 그 자체가 안철수 현상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이야기다. 민주통합당 경선이 호남에서 조차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 역시 안철수 현상 때문이다.
“국민들이 갑갑함을 풀어주지 못하는 정치현실에 대한 실망이 저에 대한 기대로 모아진 것입니다.” 안철수 본인이 짚어 낸 ‘안철수 현상의 핵심’이다. 이 안철수 현상은 그러면 거대한 정치적 태풍이 돼 연말 대선정국을 뒤흔들 것인가.
‘오빤 강남 스타일/…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 버리는 사나이…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sexy lady.’ 스스로를 ‘정신병자’에 빗대 싸이(psy)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가수 박재상이 부른 ‘강남 스타일’의 가사 내용이다.
섹시하고 익살스러운 키치(저속한)이미지들이 강한 비트의 음악과 어울려진 그 뮤직 비디오가 전 지구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하나의 현상(phenomenon)이 된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것인가. 그냥 신나고 재미있어서. 분명 그런 측면이 있다.
“저속한 춤, 강한 비트, 강남이란 호화스런 지역을 배경으로 한 흥겨운 무대, 그 이면에는 부(富)와 계급, 그리고 한국 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풍자가 숨어 있다.” 어틀랜틱지의 지적이다.
강남은 한국 사회의 ‘가진 자’가 몰려 있는 지역이다. 물질주의, 과소비, 사치로 상징되는 강남의 라이프스타일을 비꼬고 있다. 말하자면 1% 가진 자에 대한 분노가 교묘히 스며들어 있는 것이 강남 스타일로, 저항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막연한 분노를 삭이고 있다. 그 대중의 감성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이율배반적인 감정도 이입돼 있다. ‘한국 사회의 1%’인 그 강남 주민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다.
‘강남 스타일’에 한국의 대중, 특히 젊은 세대가 몰입돼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불안의 시대’는 한편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때문에 세계의 젊은이들도 공감하면서 열심히 말 춤을 추어대고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안철수 현상의 다른 형태의 분출이 강남 스타일 현상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거대한 자본이 키우고 있는 K-pop가수와는 달리 문화의 언어와 SNS(소셜네트워크)파워로만 하나의 현상을 일으켰다. 기존의 정당이란 틀을 무시했다. 그리고 젊은 세대와의 소통으로 한국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이 점에서도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강남스타일’이 유행하자 대권주자들은 저마다 반응을 보였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대구는 대구 스타일, 안동은 안동 스타일’하며 연설을 했다. 그런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해 본 말’로 결론이 내려졌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강남스타일 열풍에 편승해 명동거리에서 춤을 췄다. 그 ‘명동스타일’ 퍼포먼스는 그러나 아무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한 번도 동작을 맞추지 못하고 엇박자만 낸 그의 말 춤은 보는 사람만 외려 민망하게 한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태풍이 되어 몰아칠 것인가. ‘아마도….’ 문득 스치는 생각이다. 제대로 웃기지도 못 한다. 그러면서도 강남스타일 열풍에 엉뚱하게 편승하려든다. 그런 정치권의 엇박자성의 허우적거림이 계속되는 한은.
‘춤을 춘다. 허리를 비틀고, 골반을 튕긴다’-. 떼를 지어 말 춤을 추며 마구 뛰어노는 젊은이들의 모습. 그 퇴폐적 모습이 뭔가 불안감으로 엄습해온다. 지도자도, 방향성도 상실한 채 광야에서 마구 뛰놀던 이스라엘 회중. 그 모습이 떠올려져서다.
201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글쎄…. 여전히 안개 속을 더듬는 느낌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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