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세토의 꿈’이란 말을 기억하는가. 베이징(Beijing), 서울(Seoul), 도쿄(Tokyo). 동아시아 세 나라 수도 이름의 두음 자를 합친 것이 베세토(BESETO)로, 다가올 아시아시대의 이상을 염원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서로를 진정한 파트너로 존중한다. 베이징-서울-도쿄를 잇는 벨트는 온갖 교류의 허브를 이룬다. 역내 교역량이 급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 문화, 심지어 군사적 교류까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말 그대로 공생공영
(共生共榮)의 황금시대를 열어간다.
그 상황은 사실이지 하나의 문명사적인 사건이다. ‘베세토의 꿈’으로 상징되는 그 아시아시대는 과연 도래할 것인가.
민족주의가 꿈틀거린다. 아니 폭발직전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그리고 재연된 것이 역사전쟁이고 영토분쟁이다. 그 가장 근인(近因)적 원인 제공자는 일본이다. 그 해묵은 분쟁에 ‘국내정치’가 끼어들었다. 그러면서 사태는 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과의 일전(一戰)은 불가피하다’-. 최근 중화권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다. 중국의 환구신보는 대만의 주요 일간지와 공동으로 댜오위다오(일본명은 셴카쿠 열도)영유권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2.1%가 그 같은 반응을 보인 것으로 발표한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중국 본토를 휩쓸고 있는 강성기류다. 90% 이상의 응답자들이 댜오위다오의 영유권 확보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해야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전쟁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족주의와 민족주의가 맞부딪치면서 동아시아 지역은
자칫 화약고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잇달고 있는 것이다. 셴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해전에 돌입할 경우를 상정한 포린 폴리시지의 분석도 그 하나다.
전함 수 등 조건에서는 중국이 유리하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무기체계 외에 전투에서 극히 중요한 인적(人的)변수, 정예도 등을 감안 할 때 이스트 차이나 해상에서 중국과 일본이 격돌 했을 때 중국의 승리를 결코 보장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아니, 어쩌면 100여 년 전 청일전쟁의 재판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새삼 유행되고 있는 화두가 ‘투키디데스 트랩’(Thucydides’s trap)이다.
아테네가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그 아테네의 부상(rising)은 스파르타에게 충격이다. 펠로포네서스 반도의 기성 육지세력인 스파르타는 두려움(fear)에 사로잡힌다. 그 두려움은 결국 행동을 유발, 전쟁으로 이어진다. 투기디테스가 기록한 고대 펠로포네서스 전쟁의 서막이다. 30년이나 지속된 그 전쟁 결과 스파르타와 아테네 두 세력은 모두 파멸을 맞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부상’(rising)이란 단어와 ‘두려움’(fear)이란 단어다. 새로운 세력이 부상한다. 그러면 기존 세력은 두려움으로 그 부상을 바라본다. ‘스테이터스 쿠오’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서기1500년, 그러니까 16세기 이후 15차례 파워의 변이과정이 있었고 그 중 11번은 전쟁을 맞이했다. 파워의 전환기 마다 강대국들은 거의 예외 없이 ‘투키디데스 트랩’에 빠져든 것이다.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의 갈등도 그 경우다. 독일의 경제력이 영국을 능가하면서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도 그 ‘투키디데스 트랩’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와 함께 동남아시아 한반도, 그리고 일본을 포용한 서 태평양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던져지고 있는 질문인 것이다.
오만하다. 그러면서 불안정하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특히 일본을 제치고 G2로 부상한 요즘 들어 보이고 있는 행태다. 거기다가 군부의 입김이 날로 높아간다. 군부의 그 강성발언에 네티즌들은 환호작약이다. 중화민족주의 파고가 날로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중국을 주변 국가들은 두려움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른 한 면으로는 미국을 응시하고 있다.
이 일련의 상황은 무엇을 말하나. ‘동아시아 질서의 새 판 짜기’가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이 동아시아의 정치기류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옹졸하게도 한사코 욕된 과거 정리를 거부하고 있
는 일본도 그렇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을 향해 던진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더 더욱이. 그 발언에는 그렇지만 국내정치가 끼어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로운 국제 질서개편의 전환기에 요구되는 것은 냉철한 국제적 안목과 뚜렷한 전략목표의식이다. 그런 점에서도 한국의 외교적 실익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벌써 몇 주째인가. 베이징에서, 서울에서, 도쿄에서 저마다 민족주의의 합창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게. 계속 이어지는 그 함성소리와 함께 ‘베세토의 꿈’은 계속 멀어지기만 하는 느낌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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