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희 교사(뉴커머스 고교)
나는 등단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유명 칼럼리스트로 불리기에는 나의 글은 소박하다. 소박한 글이지만 써내려가는 시간에 밤을 새우는 일은 예사라 수업시간에 학생들 눈치 못 채게 눈을 꿈벅이며 하품하는 꼴이 내가 봐도 가관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가끔 물어본다. 그럼 왜 글을 쓰냐고.
자잘하게 써내려간 양육기가 벌써 1년이 훌쩍 넘어가기에 오늘은 나에게 스스로 물어봐야겠다. 나는 왜 자폐를 가진 나의 아들 에반이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펑펑 터트리며 글을 쓰는 걸까?. 잠자코 말 안하면 멀쩡하게도 보일 수 있는 에반인데. 나 또한 잠도 더 자고 설거지도 제대로 그날 자기 전에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단순히 엄마로 숨을 쉬고 싶었다. 버스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앞좌석을 쿵쿵 걷어차도 마냥 귀엽기만 하던 아가의 모습에서 어느덧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끔 하는 아이의 모습으로 자라나던 에반이를 어디에 한번 데리고 다닌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험이었다. 사방이 지하철과 버스 노선으로 맺어져 있는 뉴욕인지라 에반이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한 에반이를 보는 곱지 못한 시선에 볼이 화끈하면서도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만 있었던 나였지만 비를 쫄딱 맞으면서 대롱대롱 에반이와 양쪽에 이런저런 짐 가방을 달고 지하철역에 가까스로 왔었던 그 어느 날 기어코 아이 간수 하나 제대로 못한다며 아이 버릇이 없다고 하는 한 사람에게 내 목소리가 어느덧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이에게 자폐가 있어요! 그냥 이해해 주시면 안 되겠어요?” 아마 빗물이 흐르는 내 얼굴에 눈물도 따라 흘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날 잠들기 전 나는 참 많이 감사했다. 아직도 세상은 따뜻하구나. 에반이의 자폐를 천장을 찌르는 듯한 목소리로 알려야만 했던 나의 절박함을 사람들은 비웃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은 한껏 수그러들었고 나에게 모진 말을 내뱉던 그에게는 일면의 죄책감이 언뜻 내비쳤다. 그들은 엄마 손에 매달려있던 에반이를 흘깃 눈짓하여 본 것으로는 여전히 자폐가 어떠한 장애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느꼈다. 그들은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의 절실함이 무엇인지 그들이 이해했다는 것을.
그날 나는 내 눈에 예쁘기만 한 에반이의 장애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품었다. 엄마가 되어 남들 시선 받지 않고 에반이의 엄마로 가슴 한번 쭉 펴고 숨을 쉬고 싶었던 작은 이기심이 꿈틀거렸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이 너무나 어려운 에반이가 세상과 섞여 살아가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 모습을 알아주며 그의 다른 모습을 냉정하게만 보지 않아주는 사람들로만 있다면 나는 조금은 덜 울고 조금은 더 당당한 엄마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또한 거창하지 않게 낮은 숨을 쉬고 있던 한인 이민자 부모들을 처음 알게 된 그 때를 잊지 않고 싶었다. 에반이를 프리스쿨에 보내야할 시기에 에반이가 갈 학교가 없어 당황했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자폐아에 관련된 미국학교 시스템을 조금씩 알아가던 그 때에 한국에서 거의 모든 교육을 받았던 나는 장애아의 엄마로 처음으로 내가 미국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에반이 학교를 알아보는 모든 과정이 잘 맞지 않는 옷처럼 낯설고 불편했으며 교육청과의 미팅 한순간 한순간이 목이 칼칼해질 정도의 긴장으로 연결됐다. 그 중 만나게 됐던 여러 한인 부모들이 언어 장벽으로 인해 겪어야만 했던 긴장감은 언어에 대한 부담은 없었던 나의 그것에는 견주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날 만큼 아프게 팽팽하였고 그래서 그들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은 더욱더 깊었다.
힘든 이민생활에 언어장벽으로 오는 스트레스와 아이의 장애, 그로 인해 깊은 우울증에 빠져 아이의 교육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한 부모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생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집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나는 그들이 절대 자폐아 자녀를 둔 혈혈단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누군가도 같은 고통을 지고 가고 있고 그가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쩌면 그들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IEP(개별화교육개획) 서비스를 받지 않는 소위 일반학생들에게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다. 그러니 일터에서 자폐아를 도울 일은 거의 전무하다. 집에 오면 에반이 밥 해먹이고 목욕시키는 평범한 엄마다. 집에 몸이 많이 묶여 있다 보니 자폐 커뮤니티를 위해 발을 벗고 마냥 뛰어다닐 수도 없는 일이다. 한국이 마냥 그립지만 이제는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1세대 이민자이다. 그러니 생각을 정리하는데 있어 나는 한국어가 친숙하고 편하다.
이제 나는 가까스로 에반이의 장애로 흘리는 눈물이 많이 거두어져 에반이를 한껏 여유롭게 보게 됐다. 이러한 내가 이기적으로 내 숨도 좀 더 쉬면서 조금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숨도 다소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거듭된 생각 끝에 시작한 나의 작은 여정이 바로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앞으로도 내 작은 글들을 쉼이 없이 끊임없이 써나갈 것이라는 일종의 개인 선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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