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0년 전에 ‘상스러운 제안’(Indecent Proposal)이라는 영화가 히트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사업자금을 한탕 하려다가 알거지가 된 신혼부부에게 점잖은 억만장자가 접근해 “신부가 나하고 하룻밤을 지내면 100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한다. 신부(데미 무어)는 남편과 의논 끝에 갑부(로버트 레드포드)의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그의 저택으로 떠난다.
공개적 성매매요 명백한 불륜이지만 적지 않은 미국인 관객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들었다. 하룻밤만 눈을 징긋 감으면 보통 월급쟁이들이 평생 모아야할 거금을 단숨에 벌 수 있다는 욕심, 영화 속의 데미 무어 부부가 처해 있는 극한상황의 좌절감, 그리고 뭇 여성의 흠모대상인 로버트 레드포드의 매력이 은연중 작용했을 듯하다.
성매매는 인간사회의 가장 오랜 직업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족보에까지 매춘여인들이 등장한다. 예수가 속한 유대민족 전체가 성매매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민족의 시조인 유다가 창녀로 가장한 며느리에게 염소를 주고 동침해 자녀를 퍼뜨렸다. 유대나라의 성군이며 예수의 직계조상인 다윗의 증조할머니 라합도 여리고의 기생출신이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언제부턴지 성매매 개념이 신성한 결혼에까지 파고들었다. 돈을 전제로 한 결혼이다. 돈을 주고 하룻밤 함께 잘 길거리 여인을 찾듯이 많은 사람이 돈을 주고 평생을 함께 살 배우자를 찾는다. 중국의 청도(사천성)에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40시간 코스의 학원이 생겨났다는 해외토픽이 신문에 보도됐었다.
지난해 한국의 한 결혼정보 업체에 300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호주의 80대 할아버지가 “나하고 결혼하는 한국 여성에게 현금 10억원과 15억원 상당의 주택을 선물하겠다”는 공개구혼 광고를 내 화제가 됐다. 더 놀라운 일은 한 달 안에 전국에서 1,000여명이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이들 지원자 중 50대가 절반가량이었지만 20대도 100여명이나 됐다.
반대 경우도 많다. 딸을 시집보내는 부자가 아파트, 사무실, 자동차 등 3개의 열쇠를 내걸고 의사, 변호사 등 ‘사’자 들어간 직업을 가진 사윗감을 구한다는 얘기는 고전이다. 이런 식으로 결혼한 서울의 한 의사가 4년 만에 이혼하면서 처가를 상대로 결혼 전 약속한 지참금 10억원 중 절반인 5억원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그 장인에 그 사위이다.
최근 시애틀 한국일보에 돈과 결혼에 관한 기사 두 건이 동시에 실렸다. 하나는 86세 미국인 할아버지와 재혼한 페더럴웨이의 50대 한인여성이 4년간 남편 돈을 갈취한 혐의로 기소됐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불법체류자의 영주권 취득을 위해 한인 시민권자들이 위장결혼을 해주면 2만~3만달러를 사례하겠다는 브로커들의 불법행위가 극성이라는 내용이다.
기소된 페더럴웨이 한인여성은 지난 2008년 부인을 사별한 사업가 노인과 결혼한 후 그의 신용카드에서 8만 6,000달러, 은행구좌에서 6만 500달러를 빼냈으며 자기소생의 두 자녀에게 집도 사준 혐의를 받고 있다. 본인은 ‘돈이 아닌 사랑 때문’에 결혼했다며 노인의 변호사 아들이 자기에게 누명을 씌우고 한인들을 폄훼하는 발언을 일삼는다고 항변했다.
위장결혼의 패턴도 달라지고 있다. 요즘엔 영주권이 필요한 불법체류자들 외에 학비절감이나 병역기피를 위해 위장결혼을 모색하는 유학생들도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또 미주 한인사회에만 위장결혼이 성행하는 것도 아니다. 본국에도 한국취업을 원하는 동남아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위장결혼이 지난 10년 새 급격히 늘어나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작고한 ‘세기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일곱 명의 남자와 여덟 번 결혼하고 이혼했지만 ‘돈이 아닌 사랑 때문에’ 남자를 편력했다는 평판을 듣는다. “사랑을 위해 사랑을 버렸다”는 명언도 남겼다. 위의 ‘상스러운 제안’ 영화에서 로버트 레드포드를 따라갔던 데미 무어는 결국 돈과 사랑은 양립할 수 없음을 깨닫고 남편에게 돌아온다. 사랑의 결정인 결혼을 만악의 근원인 돈과 연관시키는 추태가 한인사회에서 근절됐으면 좋겠다.
<윤여춘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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