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돈을 자기 돈처럼 마구 사용해 온 혐의로 기소된 재벌총수에게 징역 4년이라는 실형이 선고되고 총수는 법정 구속됐다. 당사자는 크게 충격을 받은 듯 하고 비슷한 혐의로 기소돼 있는 다른 기업총수들도 잔뜩 긴장하는 표정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는 배임과 횡령, 탈세 등 ‘화이트칼라’ 범죄로 기소된 재벌총수들에게 집행유예와 함께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복권 시켜주는 솜방망이 처벌이 관례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재벌총수들에 대한 법의 관대함은 잘못된 풍토를 조성했다. 혐의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다 보니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그릇된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재벌들에 대한 선처가 반복되면서 이들은 관대한 처벌을 마치 당연한 특권인 양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죄를 짓더라도 자신들을 함부로 처벌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빗나
간 자신감을 갖게 되고 이것은 도덕적인 해이를 초래했다. 자기만이 아니라 주위의 다른 많은 재벌들도 비슷한 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인식은 죄책감을 희석시키며 해이를 더욱 부추겼다.
재벌들의 법의식과 도덕적 민감성이 어쩌다 이처럼 곤두박질치게 된 것일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 대학의 게리 베커 고수는 범죄의 원인을 이익과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한다. 즉 어떤 범법 행위를 할 때에는 그것이 가져다 줄 이익과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을 저울질 한 후 이익이 비용 혹은 대가보다 크다고 판단될 경우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예상되는 비용은 처벌받을 확률에다가 형량을 곱한 것이다. ‘합리적 범죄의 단순모델’로 불리는 이 이론이 모든 범죄의 동기를 다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화이트칼라 범죄를 분석하는 도구로서는 유용하다.
뛰어난 브레인들의 도움과 엄호를 받는 재벌들의 범법은 잘 드러나지 않고 기소될 확률도 낮다. 게다가 걸린다고 하더라도 처벌은 지극히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범죄의 비용이 아주 낮다는 말이다. 반면 위법과 탈법을 통해 보는 이익은 엄청나다. 수천억을 넘어 수조원대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니 그동안 재벌들은 탈법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월스트릿의 도덕적 해이와 범죄에도 같은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비용대비 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윌 허튼의 “월스트릿의 거액 성과급은 도덕성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을 제거해 버렸다”는 지적은 바로 이것을 뜻한다.
큰 거래를 하나 성사시키거나 임원 자리에 잠깐 앉아 있으면 평생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혹여 스캔들에 연루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있는 곳이 월스트릿이다. 돈이 곧 인격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도덕이 설 자리는 좁아진다.
최근 월스트릿의 중역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의식조사에서 드러난 결과는 놀랍고 충격적이다. 이들 가운데 24%는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면 비윤리적이거나 불법적인 거래에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26%는 이런 행위를 저지른 사람을 알고 있다고 밝혔으며 16%는 걸리지만 않는다면 자신도 불법행위를 저지를 용의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것이 세계 금융계를 움직인다는 월스트릿의 윤리수준이다.
상자 안에 섞은 사과가 하나만 들어 있어도 다른 사과들이 썩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미 4분의1 이상이 썩어있으니 월스트릿의 도덕성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다고 봐야 한다. 처음 눈에 띈 썩은 사과를 과감히 골라내 내던지지 못하면 부패는 번져가게 돼 있다. 한국 재벌들과 월스트릿의 도덕적 해이가 바로 그런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잠재적 이익만 충분하다면 약간의 위험부담 정도는 얼마든 감수하겠다는 계산이 화이트칼라들의 타락과 범죄를 부른다. 이를 억제하고 근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들통 날 경우 이익에 비해 훨씬 큰 비용을 치르도록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벌총수를 법정 구속한 이번 선고는 의미가 있다. 이런 처벌이 하나의 패턴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면 재벌들의 탈법 욕구는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을 것이다.
월스트릿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오히려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월스트릿의 돈이 몰리고 있다. 되풀이 되는 고질적인 망각을 다스리는 데는 회초리가 아니라 몽둥이가 약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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