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있다. 반일(反日)감정이다. 민족주의가 새삼 달아오른다. 거친 감정의 언어가 무한대의 사이버 공간에 쏟아지면서 감정싸움은 국민차원으로 번질 기세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다. 일왕(日王)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 광복절 축사에서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전례 없이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양국관계를 넘은 인권문제로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한 것이다.
일본도 맞대응에 나섰다. 통화 스와프를 재검토하겠다,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며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불사할 것 같다. 그 가운데 난무하는 것이 언어의 폭력이고 반일무드의 확산이다. 그 반일 감정의 끝은 그러면 과연 어디일까.
올 대선의 향방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는 반일감정이 아닐까. 국내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다. 그 조짐은 한일 군사정보협정 무산 파동에서부터 감지됐다. 한국과 일본이 군사정정보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다. 이미 수년 전에 이루어진 한국 정부와 여당의 합의사항이다. 그 협정이 비공개리에 국무회의에서 처리됐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야당이 공세에 나섰다. 을사늑약에, 임진왜란이 들먹여진다. 그러자 새누리당이 부랴부랴 나섰다. 협정 서명 1시간 전에 중단시킨 것이다. 자칫 친일파로 몰리는 경우 박근혜의 대권행보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런 판단에서 외교적 결례를 무릅쓴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여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고 대일 강경발언이다. ‘왜 하필 8.15라는 민감한 시기에…’- 이 대통령의 행보와 관련해 국내외에서 던져지고 있는 질문이다. ‘올해는 한국 대선의 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 같다.
워싱턴 포스트가 그 같은 시각을 내비쳤다. ‘추락한 인기를 끌어올리려는 이벤트’라는 분석에 초점을 맞추면서 12월 대선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진단을 한 것이다. ‘무책임한 표퓰리즘적인 행동이다’-. 적지 않은 한국 내 언론의 지적이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그러면서 왜 하필 그 타이밍인가에 적지 않은 한국 언론은 의문부호를 던졌던 것이다. 그 국내언론들의 보도 태도가 달라졌다. 일본규탄에 하나가 된 것이다. 일본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과 반비례해 반일 감정이 확산되면서.
국가 이해가 걸린 외교문제다. 때문에 한국 언론은 하나가 된 것인가.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는 종북주의자 보다 친일파로 몰리는 것 더 치명적이다.’ 뉴욕타임스의 지적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반일은 한국에서 해방 7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신성시 되는 이슈’다. 그 반일이라는 이슈에 이의를 제기하면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대통령은 일단 이슈를 선점해 나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역공이 만만치 않다. 야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도 폭파 발언’의 진위를 따지고 나섰다. 박정희 대통령의 과거 친일 행각을 들먹이고 있다. ‘독재자 박정희’를 넘어 ‘친일분자 박정희’를 부각시켜 박근혜 공격에 나선 것이다.
적의 적은 친구이다. 날로 확산되는 반일감정, 이와 함께 높아지는 것이 중국에 대한 기대감이다. “한국엔 전방위 보복… 일본이 중국엔 유연 대응”- 독도문제와는 달리 센카쿠문제에는 유연한 대응을 하고 있는 일본을 비난한 한국 언론의 보도다.
청와대에서는 또 이런 소리가 흘러나온다.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을 함께 논의할 정도로 한중관계는 좋다.” 한일 간 분쟁에 있어 중국의 지원을 기대해도 좋다는 식의 시사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한국과 중국 20년 수교를 통해 한국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중국이 한국의 외교적 우선순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2년 한중교역량은 60억 달러에 불과했었다. 2010년에는 1,900억 달러로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 중국의 한국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
랜드연구소의 스캇 해롤드의 지적이다. 북한을 여전히 완충지대에다가, 주요동맹으로 보고 있다. 천안함 사태, 연평도 공격 이후 한사코 북한을 감싸고 돈 데서 중국의 그 같은 입장은 재확인 됐다.
그 뿐이 아니다. 탈북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한국의 인권운동가에게 고문을 가한다. 동북공정을 통해 통일 후 북한지역에 대한 영토적 지배를 계획하고 있다. 그 목적을 위해 100억 달러의 공사비를 들여 북한과의 교통로를 확충하고 있다.
그 중국에 대해 한국은 여전히 착시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의 대선후보는 물론이고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도. 중국을 통한 북한과의 화해를 제창하면서.
한국의 안보 위협은 어디서 오나. 북한이다. 그리고 남중국해, 동중국해에서 사단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안보의 최대위협은 마치 일본인 양 반일의 감정은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전을 상실한 채 과거에만 함몰된 한국의 대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벌써부터 두렵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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