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 혹은 슬픈 물건 중의 하나는 버려진 사람이나 버려진 물건이다. 죽도록 사랑했던 애인에게 배반을 당하여 버려진 여인. 이런 여인은 한이 맺히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린다. 이럴 때, 사용되는 말이 “목숨보다 귀중한 사랑”이다. 애지중지 아껴 쓰던 물건이 주인으로부터 버려질 때 그 물건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일단 버려진 상태는 가장 쓸모없는 상황이다. 가치가 없으니 버려진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변심도 사랑이 식었거나 상대가 쓸모없음에 기인한다. 백년가약을 맺고 부부가 된 사람이 남남이 되어 돌아서는 이혼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를 서로 쓰레기처럼 보니 갈라설 수밖에 없다. 가장 슬픈 세상사 중의 하나다.
영국에 벤 윌슨(Ben Wilson·50)이란 화가가 있다. 그는 사람들이 단물은 다 빨아먹고 더 이상 쓸모가 없어 ‘택 택’하며 길거리에 버려진 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화가다. 껌처럼 쉽게 버려지는 것도 없다. 어디를 가나 버려진 껌들은 시커멓게 변하여 딱지처럼 길 위에 붙어 있다. 버려진 껌들은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또 밟힌다.
벤은 그렇게 버려진 껌 하나하나에 영혼을 불어넣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해준다. 그는 동전만한 껌 딱지에 그림을 그리고 코팅을 한다. 그것도 모두 다 사연이 있는 그림들이다. 7년 동안 그린 그림은 1만개 이상이 되며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는 버려진 껌 딱지를 찾아 나서는 것이 일과다. 그리곤 하루 종일 누워 그림을 그린다.
그의 손을 거치면 흉물같이 버려진 쓰레기 껌이 예술작품이 된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나는 그림은 한 남자의 프로포즈가 담긴 껌이라 한다. 껌에 “당신을 사랑해, 나와 결혼해 주겠소?”란 그림을 부탁한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림을 완성한 후에 여자친구가 그것을 보러 와서 그 청년의 청혼을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벤은 말한다. “껌 딱지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버려진 것을 살려내는 거다. 그리고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개념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껌은 소비사회에서 내다버리는 우리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나는 사람들이 거부하고 혐오스러워하는 걸 예술 재료로 바꾼다. 그래서 건설적인 현상으로 변화시키는 거다”라고.
세상엔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 자학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은 사회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또는 직장에서도 버려진 사람이라 생각하며 우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잘못 생각이다. 사람은 쓰레기가 아니다. 버려진 껌도 벤의 손에서 다시 생명을 되찾으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듯 사람 안엔 그보다 더한 귀중한 가치가 있다.
한 사람의 생명으로 태어난 것 보다 더 귀한 가치는 없다. 이렇듯 사람의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자신은 자신의 가치를 누구보다 인정해야 한다. 자신이 자신에게 보증을 서지 못하면 누가 보증을 서겠는가. 그리고 자신을 좋아하고 사랑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자라야만 그 누구에게 버림을 받는다 하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노자 철학에 보면 ‘무용(無用)의 용(用)’이란 말이 있다. 필요 없음의 필요다. 노자는 사람이 서서 지탱하고 있는 땅을 예로 든다. 우리가 서 있는 땅의 면적은 아주 작지만 그 주위의 땅이 있음으로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지탱되며 가치를 갖는다고 한다. 그릇 안은 텅텅 비어(無)있다. 그러나 용기인 그릇보다 그 안의 비어있음이 용(用)이 된다.
매일 수천수만 톤의 쓰레기들이 버려지고 있다. 그 중엔 다시 재활용되어 쓰여 지는 것들도 많다. 쓰레기처럼 살았던 인생이라 해도 재활용될 수 있다. 사람은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사람을 사람 되게 한다. 가능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무용의 용 같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언젠가 용이 될 수 있다.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버려진 껌 딱지. 그것에 영혼이 담긴 예술작품을 만들어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밴 윌슨.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꾸는 그의 행동. 그는 오늘도 껌 딱지에 아름다운 사연과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앞길이 막혀 캄캄하고 슬픈가. 그래도 쓰레기처럼 버려진 껌 딱지보다야 낫지 않은가. 무용의 용. 없음과 비워짐 속에 존재와 실체의 참 의미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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