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냉정하게 숫자를 다루고 판단을 내려는 일을 하는 경제전문가이지만 가끔 철학적인 화두를 던져 언론에 오르내리곤 한다. 몇 년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행복의 경제학’을 설파해 화제가 됐던 버냉키 의장은 지난 주 매서추세츠 주에서 열린 한 경제 컨퍼런스에서 또 다시 비슷한 주제의 기조연설을 했다.
버냉키는 “통계들은 미국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이것이 전체 스토리를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통계들이 미국인들이 실제로 처해 있는 고통스런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버냉키의 고백이 아니더라도 경제와 관련된 숫자와 현실 간의 괴리는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세상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가 그것”이라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남겼다. 통계는 무엇보다도 객관적이고 사실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다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오류와 왜곡으로 가득 찬 경우가 많다. 특히 경제관련 통계들은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몇 달 전에 나온 서울의 청년 실업률이 4.8%라는 정부통계를 살펴보자. 실업률은 ‘경제활동 인구’ 가운데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의 비율을 말한다. 그런데 한국정부의 실업률 조사에서는 고시를 준비하며 긴 세월을 쏟아 붓는 ‘고시 낭인’들, 그리고 ‘쉬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전직을 희망하는 사람 등 실제로는 준실업 혹은 잠재적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제외한다. ‘비경제활동 인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을 빼고 계산하는 실업률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실제 청년 실업률은 정부통계의 2배 정도 된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국제노동기구 방식으로 산정한 실업률은 정부통계보다 4배나 높게 나오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물가 역시 얼마든지 왜곡이 가능하다. 얼마 전 금값이 너무 뛰니까 이것이 물가지수를 높일까 봐 금반지 값을 물가 산정품목에서 제외시킨 꼼수가 바로 그렇다. 경제 현실을 진단하는 데는 정부의 경제지표보다 나와 주위사람들이 처해 있는 고통과 장바구니 물가가 훨씬 정확하다.
그래서인지 선진국 국민들은 정부통계에 강한 불신을 나타낸다. 정부통계를 그대로 믿는다는 사람은 10%정도에 불과하다. 자신들의 경험과 통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이런 불신은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상당하다.
집계과정에서의 의도적 왜곡이 없는 통계라 하더라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는 여전하다. 양적인 것만을 평가하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이런 지표들에서 삶의 질은 거의 읽혀지지 않는다. 현재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가장 유력한 지표로 꼽히는 ‘국내총생산’(GDP)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많은 지표들에는 ‘평균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전체를 합산한 후 구성원 숫자로 나눈 평균은 실상을 크게 뒤틀어 버리곤 한다. 여의도 정가에는 ‘정몽준 효과’라는 농담이 회자된다. 매년 국회의원들은 개인재산을 보고한다.
그런데 3조원 재산가인 정의원 한 명 때문에 국회의원 평균 재산액은 1인당 100억원씩이 더 올라간다. 마찬가지로 국민 대다수의 형편과 상관없이 1인당 국민소득은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 소수에게 경제적 실과의 대부분이 돌아가는 1% 사회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버냉키는 GDP 방식을 버리고 이를 ‘국민총행복’(GNH)으로 대체한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부탄의 예를 자주 든다. 현실적으로 모든 나라들이 부탄을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 새로운 측정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버냉키의 생각이다. 실제로 프랑스 등 일부 나라들은 GDP를 대체해 국민들의 웰빙 수준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만드는 일을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버냉키는 OECD가 조사해 매년 발표하고 있는 다양한 통계들이 완전하지는 않아도 각 나라들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수로서 상당히 괜찮은 것 같다는 견해를 나타낸다. 그런데 사회적 불안과 자살률, 소득 재분배 등을 보여주는 OECD의 많은 지수에서 한국은 최하위 수준이다. 그만큼 경제지표와 현실 간의 괴리가 크다는 말이다.
현실이 숫자의 가면에 가려지게 되면 구성원들의 삶은 갈수록 고통스러워진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을 낳기 때문이다. 숫자 뒤에 감춰진 현실을 읽어내고 고민할 만한 통찰과 연민을 결여한 정치세력은 이런 괴리를 더욱 심화시켜 왔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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