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메마른 땅으로 기록된다. 강우량이 0에 가까워서 달 표면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 척박한 땅에 색색의 꽃들이 만발하는 때가 있다. 10여년에 한번씩 겨울에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고 나면 생명의 흔적도 없던 그곳에서 꽃들이 피어난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지평선 끝까지 아득하게 꽃이 만개한 진기한 사막 풍경이 보도된 적이 있다.
물 한방울 허용 되지 않는 혹독한 결핍의 시간을 견디어낸 사막의 식물들은 때가 되자 폭발적으로 생명력을 분출함으로써 그만큼 특별한 장관을 펼쳐내는 것 같다.
세계 곳곳 최고의 선수들이 런던올림픽 경기장에 집결해 지난 2주 인간의 몸으로 가능한 최고의 장관을 펼쳐냈다. 먹고 싶고 쉬고 싶은 본능적 욕구를 통제하며 스스로를 철저한 결핍의 시간 속으로 내몰아 혹독하게 단련함으로써 얻어낸 진수들이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미국에는 신데렐라가 한명 탄생했다. 16살의 흑인소녀 개브리얼(애칭 ‘개비’) 더글라스이다. 미국 체조 역사상 한 올림픽에서 단체 금메달과 개인종합 금메달을 동시에 거머쥔 선수는 개비가 처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인종이다. 그는 체조로 금메달을 딴 최초의 흑인소녀로 기록된다.
백인 일색인 체조에서 개비는 ‘미운 오리새끼’였다. 체조에서는 드문 검은 피부, 가난한 가정환경 모두 체조선수로서 성공하기에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런 그가 우아한 백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데는 어린 소녀답지 않은 단호한 결단이 있었다. 꿈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 ·결핍도 감수하겠다는 야무진 의지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족이었다.
통통 튀어 올라 날다람쥐라는 별명이 붙은 개비는 6살 때 체조를 시작했다. 버지니아 비치의 집 근처에서 재미삼아 체조를 배웠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숀 존슨과 중국인 코치 리앙 차우를 보면서 꿈을 갖게 되었다. 자신도 차우의 지도를 받아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야심이었다.
그리고는 2010년 14살의 어린 소녀는 엄마와 언니오빠, 정든 집을 떠나 코치가 있는 머나 먼 아이오와로 갔다. 반대하는 엄마를 설득하고 설득해서 얻어낸 기회였다. 개비의 가정형편을 아는 차우의 주선으로 그는 백인가정에서 살게 되었다. 흑인은 눈을 씻고 봐도 없는 낯선 백인동네에서 개비는 학교에 다니고 훈련을 받았다. 2년 동안 딱 4번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외롭고 고되고 서러운 시간들 - 소녀는 사막의 씨앗처럼 인고의 세월을 숨죽여 견디고는 마침내 빛나는 체조요정으로 날아올랐다.
어떤 종목이든 시작은 재능이다. 재능이 있으면 재미가 있어서 훈련을 받게 되고 훈련을 통해 실력을 쌓게 된다. 매년 많은 어린이들이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재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중 75%는 13살 이전에 그만 둔다고 한다. 몇 년 하고 나면 싫증이 나거나 경기 스트레스가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묵묵히 이겨내는 끈질김, 보통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가 되려는 야심,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훈련을 버티는 강인함, 모든 부차적인 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결단력…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한 기본적 자질들이다. 결국은 정신력이다.
한국의 레슬러 김현우는 레슬링 매트가 수영장이 될 정도로 땀을 흘리며 지옥훈련을 했다고 한다. 그 정도면 이미 몸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정신이 하는 일이다. 그가 오른쪽 눈이 퉁퉁 부어 안 보이는 상태로도 금메달을 얻어낸 비결은 이렇게 길러진 무서운 정신력이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올림픽 경기에서 승패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육체적 기량은 객관적으로 모두가 금메달감이다. 그래도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는 데 그 마지막 선을 가르는 것은 정신력이라고 한다. 아무리 경험많은 선수도 경기 직전에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아득하다고 고백한다. 그런 긴장을 딛고 누가 승리를 하겠는가. ‘강심장’이 이기기 마련이다.
10일 축구 3·4위전에서 한국은 일본을 통쾌하게 이겼다. 일본 앞에만 서면 본능적으로 치열해지는 투혼, 이기면 군복무 면제라는 강한 동기부여가 제대로 작동한 것 같다. 실력보다는 정신력, 기 싸움에서 한국이 이겼다.
인생에서 뭔가를 성취하려면 야망과 불굴의 의지가 필요하다. 야망으로 세운 높은 목표를 불굴의 의지로 성취해낸 선수들이 일생일대의 꽃을 피워내는 것이 올림픽이다. 그들의 경이로운 성취에 박수를 보낸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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