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에서 한국팀이 하루에 무려 3개의 금메달을 따내 전 국민을 환호하게 만들었던 지난 1일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일이 일어났다. 배드민턴에서 발생한 고의 패배 스캔들이 그것인데 이로 인해 한국이 이날 거둔 눈부신 성과는 상당 부분 빛이 바래 버렸다. 이날 저녁 미국 언론들은 배드민턴 사태를 이번 올림픽 최대 스캔들이라며 주요 뉴스로 다룬 것은 물론 일부 스포츠 방송에서는 아예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한국팀의 선전은 미국 언론에 그다지 관심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스캔들은 구미가 당기는 뉴스거리가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부정적인 뉴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런 것을 더 오래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론이 이런 스캔들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저널리즘’의 ‘저널’이라는 말이 본래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뜻하고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부정적인 내용의 이야기는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우리의 뇌에 더 깊이 각인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업소에서 겪은 좋은 경험은 평균 5명에게 들려주지만 불쾌했던 경험은 22명에게 털어놓는 것이다. 이 통계는 부정적인 경험들이 훨씬 깊이 기억되고 훨씬 빨리 퍼져 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선수들의 눈부신 선전은 국민적인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고 있지만 스캔들은 국위선양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마이너스 작용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올림픽처럼 국가의 명예를 걸고 벌이는 이벤트에서는 긍정적인 성과도 좋지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만한 실수와 일탈을 저지르지 않게 조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부정적 스캔들의 파급성은 왜 선거전에서 상대의 취약점을 집중 부각시키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극성을 부리는지 잘 설명해 준다. 10여년 전부터 이런 추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네거티브가 선거전의 대세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올 봄 대선 공화당 예비선거가 바로 그랬다. 특히 플로리다 경선을 앞두고 쏟아진 광고들은 네거티브 일색이었다. 가장 많은 돈을 사용한 롬니의 광고를 분석해 보니 전부가 네거티브였으며 포지티브 광고는 단 0.1%, 그것도 스페인어 광고뿐이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유권자들은 네거티브 캠페인을 곱지 않게 본다. 그리고 자신들은 네거티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밝혀진 사실은 이런 장담과 거리가 있다. 유권자들에게 2000년도 부시와 고어의 캠페인 광고를 보여주면서 뇌파를 측정했더니 뇌가 포지티브와 중립적 내용의 광고보다 네거티브 광고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성향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자연스런 산물이라는 진화생물학자들의 해석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온갖 위험에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부정적인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발달하지 못하면 포식자들에게 먹힐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다.
물론 모든 유권자들이 네거티브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49대51로 갈리는 팽팽한 승부에서 소수에게 영향만 끼쳐도 승패에는 결정적이다. 어차피 두 진영의 골수 지지자들은 어떤 광고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네거티브 캠페인은 주로 부동층을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주로 공화당이 네거티브 캠페인에 주력했다. 그러나 50대50의 백중세를 보이는 이번 대선에서는 오바마 역시 네거티브의 유혹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몸 풀기가 본격화 되고 있는 한국 대선도 현재의 분위기와 지지도 추이로 볼 때 어느 때 보다도 치열한 네거티브 공방이 예상된다.
네거티브 홍수 속에서 유권자들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자칫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냉소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네거티브 포화에 후보들은 만신창이가 된다. 그러다 보면 선거가 가장 좋은 후보, 즉 ‘최선의 인물’을 뽑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덜 나빠 보이는 후보, 즉 ‘차악의 인물’을 뽑는 절차로 전락해 버린다.
또 승부가 난 후 악수를 나누더라도 네거티브의 감정적 앙금은 그대로 남는다. 이런 앙금은 타협과 대화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적대적인 진흙탕 싸움이 정치판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 한국과 미국의 정치는 네거티브가 증오를 낳고 증오는 다시 네거티브를 부르는 악순환의 늪에 깊이 빠져 있다. 그런데도 이런 늪에서 정치를 건져 낼 뾰족한 방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낭만의 정치는 이미 종언을 고했다는 암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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