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이 지난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는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고, 불통이란 비판엔 “그런 말 들은 적 없다”며 “내가 불통이면 총선에서 이겼겠느냐. 국민들과 소통은 잘되고 있다”고 강변했다. 그는 이어 “불통과 소신은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고 일갈했다.
“정수장학회는 강탈한 장물인데 그걸 끝까지 가지고 대선을 치를 거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정수장학회의 설립과정을 아는 국민들은 박 의원이 그래도 이번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털고 갈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적반하장으로 “이제 와서 나보고 뭘 어쩌란 말이냐”는 투의 뻔뻔스런 태도에 내심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총선 때 자신부터 기득권을 버리고 모든 걸 다 바꾸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지만 속담에 ‘세살 적 버릇 여든 간다’고 예나 지금이나 ‘박근혜는 그저 박근혜일’ 뿐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그가 말하는 과거 속에 자신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남의 재산을 빼앗아 만든 장학회조차 내놓지 못하겠다고 완강히 버티면서 어떻게 잘못된 과거와 단절할 수 있는가.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미래를 고민할 수는 없다. 현 시세로 10조원이 넘는 재산권을 포기하는 일이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진정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생각이라면 만시지탄이나 이제라도 확실히 내려놓고 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불통 논란만 해도 그렇다. 지금까지 자신이 억울하게(?) 불통이란 말을 들었다면 앞으론 절대로 그런 말 안 듣도록 각별히 소통에 힘쓰겠노라고 다짐하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옳다. 그런데 반대로 자기는 전혀 불통이라고 생각지 않는데 사람들은 왜 소신을 불통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신문도 안 보는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모든 신문이 다 자신의 불통을 문제 삼는 데도 정작 본인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으니 이게 불통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박 의원은 지난 2002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이회창이 자신의 경선 룰 변경 요구를 거부하자 탈당했던 전력이 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이재오, 정몽준 등이 10년 전 자신이 했던 것과 똑같은 요구를 하자 안면몰수하고 “선수가 룰을 따라야지 룰을 바꾸자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일축해 결국 두 사람 모두 주저앉고 말았다. 정치란 모름지기 대화와 타협인데 이처럼 막무가내로 마이 웨이 만을 고집하니 그가 불통을 넘어 먹통 소릴 듣는 것이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내건 박 의원의 소망대로 오는 12월 설혹 그녀의 꿈이 이뤄진다 해도 소통과 합의를 통해 국민과 같이 가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려 한다면 자신은 물론 국민 모두가 불행해진다. ‘박근혜의 꿈’과 ‘국민의 꿈’이 함께 이루어지는 나라가 되면 좋겠지만, 박 의원 대선캠프 측근들의 면면을 보면 어쩐지 동상이몽으로 끝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누가 집권하든 ‘저녁이 있는 삶’을 향한 국민의 질박한 꿈이 버림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중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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