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드롬’이 다시 한번 한국을 휘몰아치고 있다. 강력한 리더라기보다 백면서생 인상이 강한 안철수 서울대 교수에 열광하는 현상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의 등장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날로 일그러져가는 세태가 낳은 시대적 요구의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의 등장에 기성 정치권은 크게 긴장한 표정들이다. 책을 내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지지도가 급상승하자 안 교수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보수진영은 물론이고 일부 진보 논객들까지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 안철수 검증과 먼지 털기가 시작된 것이다.
안철수 교수에 쏟아지고 있는 비판의 핵심은 정치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정치적 경험이 없는 인물에게 어떻게 국정을 맡길 수 있겠느냐는 ‘우려’이다.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하는 것이며, 그러니 정치경험이 전무한 안철수 교수는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비판에 대해 안 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대담집에서 “낡은 체제와 결별을 해야 하는 시대에 나쁜 경험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맞받아쳤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경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경험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만들어 주고 인식을 형성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험을 해 왔는가는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하는데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정치인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안 교수는 클린턴의 말을 인용해 “경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이다. 나쁜 경험을 오래한 것보다는 아무런 경험을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낫다”고 지적한다.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경험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헤아려 보자. 한국정치가 지금처럼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정치인들의 경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정치판에는 ‘정치 9단’이니 ‘선거의 여왕’이니 하는 고단수 정치인들이 즐비했다. 그럼에도 정치수준은 사회 다른 분야들에 비해 창피할 정도로 낙후돼 있다.
한국에서는 정치인들, 특히 정치리더들의 경험은 국가의 통합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연륜이나 경륜보다는, 자신들의 세를 지키고 확장해 나가는 술수와 정치 공학적 기교를 많이 의미해 왔다. 그래서 경험 많은 정치인 하면 노련함 보다는 노회하다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런 경험들이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것일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아주 나쁜 경험의 범주에 든다.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이 안철수 교수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 경험이 풍부한 인물들이 이끌어 온 정치판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절망감의 표현이다. 또 갈라질 대로 갈라진 한국사회를 봉합하고 치유하는 일이 기성 정치세력으로는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는 냉정한 현실인식이기도 하다.
기성 정치인들에 의해 획기적인 사회변화가 이뤄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미국정치를 연구해 온 한 학자는 “정치권에 오래 몸담아 온 프로페셔널 정치인들은 어떤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경우 안 되는 5가지 이유를 먼저 생각한다”고 꼬집는다. 밥그릇을 챙겨줘야 할 얽히고설킨 관계와 기득권이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 2008년 대선에 출마한 오마바 대통령도 경험이 너무 없지 않느냐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이에 대해 오바마는 “경험이란 종종 오래 존재해 왔다는 것을 뜻할 뿐”이라며 “인터넷 업계에서 구글보다 먼저 시작한 많은 업체들이 있지만 구글이 잘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명쾌히 대답했다. 정치의 영역에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느냐 보다도 어떤 경험을 해 왔느냐가 더 중요하다. 경험의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인 것이다.
정치판에서의 경험뿐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모든 경험들이 정치적 리더십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실 이름만 달리할 뿐 모든 인간관계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을 잘 꾸려온 인물이라면 정치판에서도 얼마든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식견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 토론을 허용하는 열린 생각이다. 이런 태도는 마음먹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이미 형성돼 있어야 한다.
정치는 정치경험 많은 사람들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기득권 옹호에 다름 아니다. 불안해 하는 국민들을 자극하려는 전략이겠지만 동시에 정치권의 불안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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