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저축은행들이 큰 수난을 겪고 있다. 얼마 전에는 몇 개가 파산하더니 지금은 그 후유증이 너무 커서 또 탈이다. 그 저축은행의 돈을 남몰래 받아 쓴 것이 문제가 되어 대통령 형님부터 고급 관리들과 심지어 여야당 정치거물들까지 쇠고랑을 차게 생겼다.
그런데 우리 같은 경제 문외한들에게는 이상스럽게 보이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 이름이 무슨 무슨 ‘저축’ 은행인데 그렇게 비자금을 마구 뿌려 버리면 도대체 무슨 돈으로 ‘저축’을 하는가. 그런 돈을 뿌리면 더 많은 돈이 저절로 저축된다는 것인가.
부정으로 거래되는 돈을 흔히 ‘검은 돈’이라고 한다. 그것은 명백히 인종차별적 표현에 해당된다. 뒷돈이나 책상 아래로 건네는 돈이 검은 돈이라면 정당하게 거래되는 돈은 ‘하얀 돈’이란 말이다. 은연 중에 흑인의 피부색과 백인의 피부색을 연상시킨다. ‘돈 세탁’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 것 아닌가.
한국에서는 ‘눈먼 돈’이라는 말도 유행한다. 몇 년 전 대통령 선거 때 한 트럭 실어다 주었던 돈, 그래서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까지 생겼던 그 사건, 참으로 눈 먼 돈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눈먼 돈은 배달사고를 자주 일으키기도 한다.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눈먼 돈’도 시각 장애우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모욕적인 표현이다. 눈 먼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아예 ‘검은 돈’이나 ‘눈먼 돈’ 자체가 없어져야한다. 사물이 없어지면 그걸 지칭하는 언어도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일까. 가령 마약 카르텔이 사용하는 검은 돈이 국가예산보다 더 큰 규모라는 나라도 있다. 경찰들도 정당한 월급보다 마약조직에서 받는 뒷돈이 더 많다니 어찌 검은 돈이 쉽게 근절되랴.
그런데 부끄럽게도 검은 돈이나 눈먼 돈은 종교 기관에서도 상당히 많이 굴러다닌다. 지금 한국교회를 파괴시키는 제일의 공적이 바로 성직매매라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불교의 몇 몇 못 된 지도자들이 도박판에서 상당히 큰 판돈을 걸었다는데 그것도 눈먼 돈이다. 가톨릭 교황청 전용은행이 마피아와의 커넥션을 통하여 검은 돈 뒷거래를 했다는 게 유언비어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예수님을 처형시키는 일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배신자 유다도 30개의 은화를 검은 뇌물로 받지 않았던가. 하나님에게 바쳐진 거룩한 돈이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일에 악용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싸움은 결국 재산싸움’이다. 믿음으로 드린 돈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파괴하는 검은 돈이 되고 말았다.
이런 더러운 돈이 대량으로 흘러 다닌다는 것은 마치 강물이 오염되어 악취가 나는 것과 같다. 생태계의 대량 파괴가 바로 온 인류를 멸절시킬 수도 있는 것처럼 눈 먼 돈들 때문에 인류문명이 바벨탑처럼 폭삭 무너질 수도 있다. ‘나쁜 돈이 좋은 돈을 차버린다’는 경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만 해도 검은 돈 때문에 ‘정치는 바른 것’(政은 正)이라는 공자의 진리가 무효화되어 왔다. 사법부조차 뇌물 때문에 불의를 정의로 둔갑시키곤 해서 ‘유전무죄/무전유죄’가 되었다. 경제, 군사, 교육, 문화, 종교 등 인류사회를 지탱하는 근간들이 검은 돈과 눈먼 돈이라는 아편 때문에 죽는 줄도 모르고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더러운 돈이 가정파괴범으로도 날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외친다. 검은 돈이라면 아예 싹을 잘라내야 한다. 돈이란 돈은 모두 투명하게만 사용해야 한다. 눈먼 돈이 있다면 그 눈을 확 뜨게 해서 제 길로 바로 가게 해야 한다. “결혼한 뒤에는 돈 쓰는 일에 부부가 반드시 정직하겠다고 약속해야 결혼주례 허락합니다”라고 못 박는 목사도 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돈을 속이는 것은 더 나쁜 것을 속이는 씨앗이기 때문이란다.
‘뇌물 건네지 않는 기업’끼리 단체를 조직한 사례도 있다. 검은 돈을 요구하는 국가나 기업과는 거래를 끊겠다는 결단을 실천하는 사업가들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런 일에는 종교가 앞장서야 한다. 성경에도 맹인이 눈을 뜬 기적이 많고, 불도에서도 진리를 깨닫는 걸 개안(開眼)이라 하지 않는가. 검은 돈을 회개시키고 눈먼 돈을 개안 수술하는 일에는 단연 종교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하겠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정말 걸어볼만한 걸까.
<이정근 목사·미주성결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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