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런던 올림픽이 개막되었다. 앞으로 2주 동안 전 세계 수십억의 눈은 런던의 경기장에 고정된다. 관중의 응원과 환호 속에 선수들은 달리고 날아오르고 들어올린다.
만약 관중은 없고 선수들끼리만 경기를 한다면 어떨까. 누가 옆에 있건 없건 실력에 따라 성적을 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사람들이 환호하고 야유하는 데 따라 선수는 실력 이상의 기량을 발휘하기도 하고 형편없는 결과를 내기도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촉진현상이다. 사람은 서로 서로 더불어 사는 존재, 사회적 동물이라는 증거이다.
삶이 관중 없는 경기장 같은 사람들이 있다. 적막하고 공허해서 캄캄하다. 때로는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때로는 망상의 동굴 속에 스스로를 유폐시켜서 외톨이가 된 사람들이다. 단절은 좌절을 낳고 좌절은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암세포처럼 증식해 어느 순간 악마의 위력으로 폭발한다. 그런 사건이 또 일어났다.
지난 20일 콜로라도, 오로라의 심야 극장에서 제임스 홈스라는 백인청년이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죽고 58명이 부상당했다. 샌디에고의 부유한 교외지역에서 자라나 UC 리버사이드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콜로라도 대학 의과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던 학생이다.
아버지는 소프트웨어 매니저 엄마는 간호사인 그는 지난 가을 콜로라도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청년으로 보였다. 조용하고 수줍고 내성적이기는 해도 외톨이는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극장에도 가고 여행도 가고 2008년에는 불우아동 캠프에서 카운슬러로 일하기도 했다.
특히 학업성적이 좋아서 콜로라도의 의과대학에 국립 보건연구소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신경과학 분야 명문인 이 대학원 박사과정은 입학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전체 학생 30여명에 지난해 신입생으로 단 6명이 뽑혔다.
명문 대학원에 장학금 받고 진학한 명석한 아들, 교통위반 티켓 한장 외에는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한 적이 없는 착실한 청년 - “이제 다 키웠다. 자식 걱정은 끝”이라고 부모들이 마음을 놓을 조건이다.
그런 아들이 머리를 주홍색으로 염색하고 특수공작원 같은 복장으로 극장에 나타나 무차별 살육을 벌이리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부모로서 이보다 참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량 살상사건을 벌이는 ‘지옥의 사자’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부류이다. 첫째는 정신이 온전한 케이스. 타고난 냉혈한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전혀 느낌이 없고 사람을 죽이면서 쾌감마저 느끼는 사이코패스이다. 1999년 콜럼바인 고교에서 총기난사사건을 벌이고 자살한 범인 중 한명인 에릭 해리스가 이에 속한다.
둘째는 약물중독이나 정신질환 등으로 제 정신이 아닌 상태. 환청 환시로 머릿속의 망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분열증이 대표적이다. 2007년 버지니아 텍 사건의 조승희가 이에 해당하는 데, 어려서부터 학대 받거나 왕따 당하면서 그 분노를 속으로 누르며 외톨이 생활을 하다가 중증의 정신질환으로 발전한 경우이다.
이번 콜로라도 사건의 용의자 홈스는 스스로 단절된 생활을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콜로라도로 이사한 후 급격하게 외톨이로 바뀌면서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은 것으로 이웃들은 전했다. 그러다 학교를 자퇴하고 총기와 탄약들을 사모으던 최근 몇 주전 그는 교내 정신분열증 전문의를 찾아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의 이런 변화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든 사건에는 조짐이 있다. 무차별 총격 같은 대형 사건이 하루 아침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대개 10대 중반부터 조짐이 나타나다가 20살 즈음 사건이 터진다. 예를 들어 정신분열증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건 당시 조승희는 23살, 지난해 애리조나 투산에서 총기난사 사건을 벌인 제러드 러프너는 22살, 이번 홈스는 24살이다.
부모들이 좀 더 관심을 갖고 살펴서 미심쩍은 조짐이 보일 때 치료를 받게 했다면 참극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성공한 자녀보다 행복한 자녀를 키우는 것이 먼저이다. 행복은 관계에서 나온다. 부모와 긴밀해야, 그래서 때마다 사랑과 기도를 먹고 자라야 아이들은 행복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 관중 없는 경기장에 자녀가 버려지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부모는 최소한의 관중이다. 관중이 항상 응원하는 선수는 실력 이상의 기량을 펼친다. 행복하니 성공하는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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