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고객들이 이해하기 힘들어 했던 법률 개념은 이해 상충(conflict of interest)이었다. 변호사는 자신의 고객만을 위해 일하게끔 되어 있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불공평하다고 보여질 수 있는 일도 고객의 이익 때문에 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고객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데에 걸림돌이 있다면 피해야 한다. 이것은 변호사의 법적, 윤리적 책임인데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고객들에게 어려울 때가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선 한인사회에서 변호사를 찾게 되는 가장 잦은 이유가 사업체의 매매이다. 그런데 매매라는 것은 판매자와 매입자 사이에 이해가 상충되는 일이다. 물론 서로 매매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공통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거쳐야 되는 매매계약서 작성, 임대 계약 협상, 그리고 최종 합의도출에서 서명하게 되는 갖가지 서류들의 준비에 당사자들 간 이해의 상충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 제법 된다. 한 쪽에게 유리한 조항은 상대방에게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매자와 매입자 모두 한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경우를 본다. 당사자 간에 모든 점에 대해 합의를 보았으니 변호사는 그 합의대로 공정하게 서류를 준비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요청한다.
그러나 변호사가 준비해야 할 여러 서류들의 세부 조항에 다다르면 사실 미리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들이 많다. 이러한 조항들에 대해 당사자들 사이에 생각과 입장이 충분히 다를 수 있다. 그리고 합의를 보았다고 하는 부분들도 서류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해석과 후속 조치가 달라질 수 있기에 변호사가 양쪽의 입장을 대변해 서류 작성을 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같은 변호사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자 하는 이유는 비용 절감과 일처리의 신속성 때문이다. 이 모두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한 변호사가 양측을 위해 일하다가 당사자들 사이에 이견이나 분쟁이 생기는 경우 변호사는 그 때까지 해왔던 일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사자들은 그 때부터 각자 다른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게 된다. 오히려 결국 더 많은 비용이 소모되고 일도 지연되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변호사를 찾아오는 경우로 잦은 것이 합의 이혼이다. 모든 부분에 당사자들 간에 합의가 이루어 졌으니 그대로 합의서를 준비하고 이혼까지 진행시켜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다른 사람과 동업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모두를 위해 공평한 동업계약서를 작성해 달라고 한 변호사를 찾아와 부탁하는 동업자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변호사는 고객들이 혹시 미처 고려하지 못 했을 부분을 하나씩 짚어 가야 하는데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여러 고객들을 동시에 보호할 수 없다. 그렇기에 번거롭고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개개인이 따로 변호사를 선임해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덧붙일 것은 변호사가 고객의 일을 수임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하는 것이 새로 맡게 될 일에 과거나 현재의 다른 고객들 때문에 이해의 상충이 있을 수 있는지의 확인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과거에 건물주를 위해 임대 계약서를 작성해 주었던 사업체의 매매 건을 맡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업체 매매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건물주의 동의가 필요한데 과거에 건물주 변호사로서 건물주의 입장과 이익만을 대변했던 과거의 역할을 무시하고 새로운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고객이 일을 맡기고자 하는 변호사가 그 고객의 상대방과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럴 때도 변호사는 그 일을 맡을 수가 없다. 실제적인 이해 상충이 없더라도 그러할 가능성의 오해 소지가 있을 경우에는 수임을 사양해야 한다.
물론 모든 경우에 꼭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의 조력 없이 일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변호사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사업체 매매의 경우에도 판매자나 매입자 가운데 변호사 도움 없이 매매를 추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변호사 없이 일을 추진하는 경우와 한 변호사를 선임해 양쪽 모두 보호 받으려 하는 경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객들 사이에 이해가 상충될 수 있는 일은 한 변호사가 맡아 처리할 수 없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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